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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감독의 행보가 기대되는 "차우"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8.05 12:32

 별 기대하지 않고 본 이 영화의 끝에서 느낀건 신선함이었다. 기존의 영화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대중을 무서워하지 않는 감독의 자신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실시리 2Km라는 영화의 감독이기에 그 비슷한 포맷이라 생각했긴 했지만 그때 보다 확실히 감독은 성장해있었다. 

 아니 어찌 보면 자신이 들어내고자 하는 것을 전작보다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무질서와 비예측적인 현실의 접근을 만드는 이 영화는 시실리 2km처럼 영화 초반부에 삼매리 11km라는 표지판을 보여준다. 이 표지판은 마치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곳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 속이라 이야기해주는 듯 보인다. 

 상당히 산만하고 소모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사라지며 수많은 '왜'라는 의문을 안겨주는 씬들이 구성되어 있지만 어짜피 그것이 현실의 한 부분이 아니던가? 현실의 삶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없이 등장하고 이유없이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인 것 아니던가? 영화속에서 바라보는 인간상은 우리들 주변에서 너무나 흔히 볼수 있는 모습 아니던가? 이렇게 관객이 불편하게 볼수 밖에 없는 영화를 친근하게 풀어낸다는 것은 감독의 재능이라 생각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의 영화에 칭찬을 하는 건 아니지만 많은이가 그의 영화를 '재밌게' 받아 들이고 있다. 특히 블로그에 포스팅한다고 글을 쓰는 글쟁이들 처럼 영화의 흠집을 찾는 이들(필자를 포함)이 아닌 일반 관객들이 더욱 이 영화를 재밌다 이야기한다. 

사실 이영화를 일반적인 잣대에서 평가하자면 흠집 골라내기 정말 안성맞춤이다. 영화는 분석의 대상이기 이전의 재미와 메세지 전달의 매체다. 얼마나 감독의 의도와 느낌을 관객에게 잘 전달했느냐가 관건이지.. 수많은 글쟁이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인물은 쿠엔티타란티노였다. 얼핏 생각났다. 그렇다고 '신정원' 감독의 스타일이 쿠엔티타란티노를 닮았다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의 돌발적이고 불편한 시도가 쿠엔티타란티노를 연상케 했을 뿐이니깐.

신정원 감독은 누구인가?

국내영화 시장에서 드물게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다. 임창정의 '슬른 혼잣말'의 디렉팅 이후 임창정의 소개로 윤제균 감독의 '색즉시공'의 비쥬얼 슈퍼바이저를 하며 영화 감독의 기반을 닦았다. 뮤직비디오 제작 당시에도 드라마타이즈의 작업을 주로 하였으며 영화와 같은 플롯 진행을 보여주었다. 비쥬얼을 중심으로 하는 뮤직비디오 감독이 아니었기에 영화 감독으로의 진입이 좀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타의 영화 감독과는 다른 색을 뮤직비디오에서 가져온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위에서도 얘기 했듯이 모든 이유를 영화속에 다 녹아내는 다른 '성공적인' 영화보다는 불편한 관객의 접선이었고 매우 즉흥적인 냄새도 나는 듯했다. 비쥬얼적인 부분에서 감각적이진 않지만 뭔지 모를 감독만의 색을 가지고 표현하는 것이 확실히 들어나 있다. 확실히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느낌을 충실히 관객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져온듯하다. 이렇게 자신의 색이 뚜렷한 감독이 국내 영화시장에 등장했다는 것은 상당히 반가운 일이다. 차기작이 매우 기대된다.

CG는 과연 괜찮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부분에 만족스럽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어쩔수 없는 시장의 문제이니 하지만 "돈이 없어 이것 밖엔 못만들었어요"는 어쩔수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과정이 어쨋든 최고의 퀄리티를 뽑았어야했다. 비록 못봐줄정도의 퀄리티는 아니었고 B급 영화라는 틀에서 생각했을 때 문안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좀 아쉽다. 아직 국내 영화시장에서의 과도기라 생각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좀더 괜찮은 퀄리티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길 기대한다.

엉뚱한 이야기지만 재밌어하지 못하는 관객들...

 언젠가 부터 우리는 영화를 볼때 이 영화는 이런 영화다라고 단정짓고 스크린 앞에 앉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해 포스팅한 블로그의 글중에 "액션이라기에는 어쩌구저쩌구"가 많았다. 그리고 해운대에 관한 평에도 "재난영화라기에는 어쩌구 저쩌구"....

 물론 이게 영화사쪽의 마케팅과 주말이면 틀어대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내는 결과이지만 관객에게도 문제가 있다. 왜 기대를 하고 들어가는가? 어떠한 이유로 극장에 들어섰던 모든걸 하얗게 만들고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를 재밌게 보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기전에 예고편 조차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런것들은 영화를 재밌게 보는데 해가 됐음 됐지 어떠한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영화값도 올라 9000원이나 하는 영화 관람료를 왜 재미없게 영화를 봐서 버리는지 모르겠다. 본인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본다면 10에 9은 재밌게 볼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어떠한 기대도 하지말고 어떠한 영화의 장르적 구분도 하지말고 보자. 그리고 가장 멍청한 짓인 영화를 보면서 흠집 좀 찾지 말자. 돈내고 영화관 들어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들어나는 단점은 그냥 편하게 관람해도 눈에 보이게 마련이다. 앞으로 좀더 영화를 재밌게 보도록하자.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감독은 '차우'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것에 반도 못 보여줬다 얘기한다. 그의 머리속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아직 스스로 미숙하다고 생각하는 표현의 방법이 개선되어진다면 상당한 '괴물'이 나오지 않을때 생각해본다. 기대하고 영화를 관람하지 말자 얘기했지만 어쨋든 그의 차기작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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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C.G 하지만 재밌는 '해운대'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7.30 15:18

 부산까지 자전거로 여행을 하고 해운대로 들어서서 영화 '해운대'를 봤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때 오락영화로 그렇게 크게 흠잡을 곳 없다고 생각합니다. 윤제균 감독이 워낙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으니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 구성

여타의 재난 영화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많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산만하게 이어지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가는 집중도를 보여줍니다. 곳곳에 재미 요소가 잘 배치해있어 큰 웃음을 주고 있고 사람과 사람간의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재난 영화에서 늘상 느끼는 이해관계에 얽힌 답답함 역시 한층 영화에 몰입을 도와줍니다. 

이야기의 결말

이 부분은 의견이 나뉘는 부분입니다. 사실 전 너무 갑작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타격이 큰 재해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갑작스레 행복한 표정들을 짓는다는 것이 의아스러웠습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좌절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얘기하고자 했겠지만 이야기 전개가 그리 매끄럽단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감독의 전작인 1번가의 기적에서도 느꼈던 그런 생뚱맞은 결말은 아니었지만 좀 급히 마무리를 지은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

 다른 배우들은 제 개인적으로 흡족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박중훈...
뭔간 자신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해 보이더군요. 너무 예전의 재밌는 캐릭터에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인물의 감정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억제하는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엑스트라의 연기... 간혹 보이는 엑스트라의 연기는...ㅜㅜ
영화를 보면 아시게 될겁니다..
그 어색한 엑스트라의 연기..자기가 어찌해야할지 몰라 어리버리 움직이는 그들의 연기는 최악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왜 '봉준호'가 대단한가를 느꼈습니다.
물론 윤제균 감독도 '봉준호'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긴하지만요.

컴퓨터그래픽

사실 이부분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상당한 스케일의 CG가 나오고 영화 홍보에서도 한스울릭이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죠. 하지만 실망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더군요.

첫째...
쓰나미가 건물을 뒤덮는데 건물에 파도에 의한 그림자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따로 놀아 보이죠.

둘째...
CG 색보정이 엉망이었습니다. CG로 만들어낸 크리에이쳐들을 실사와 잘 어울리도록 보정해줘야하는데 일부 '나 CG요'라고 말하는듯 했습니다. 그렇게 내세우는 '물' 역시 간혹 색때문에 CG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셋째...
바위에서 게들이 떼로 올라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좀 어색하더군요. 다리가 바위를 밀고 올라가는 것 처럼 보이지 않고 그냥 미끄러져 가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새들이 떼로 지나가는 장면들도 애니메이션이 어색했습니다.

넷째...
가장 흔히 들어내는 CG티인...실사와 CG크리에쳐간의 빛의 차이입니다. 실사에서의 빛과 그림자의 방향이 CG의 빛과 그림자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 역시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그리 크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살짝 티가 나더군요.

다섯째...
컬러콜렉션.전체 색보정부분입니다. 각씬에 대한 컬러컨셉도 불분명하고 너무 들쑥 날쑥입니다. 그리고 원색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듯 합니다. 마치 90년대 방화를 보는듯 싼티나 보이는 컬러콜렉션이었습니다. 차라리 요즘 케이블에서 하는 드라마들이 더 보정을 잘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사실 물을 CG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실사와 같아 보이도록 CG를 출력하는 것은 비용과 시간이 상당히 많이 소요되고 어려운 기술입니다. 그래서 매우 중요한 부분임은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모두 아실것입니다. 하지만 또 중요한 것이 CG 파트의 한부분이 합성입니다. 3D프로그램으로 출력된 부분을 실사와 결합하여 진짜처럼 보이게하는 부분이 합성파트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 합성파트(슈퍼바이저)가 매우 부족해보였습니다.

글을 마치며

 윤제균 감독은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가는 재주가 있지만 미적 감각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 부족해 보입니다. 한층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좀더 자신의 감각을 키워 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감독이지만 회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아트데렉터와 좀더 많은 교류를 통해 장면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누군가에세 추천할 만큼 재밌습니다. 감독의 이야기꾼적 재능에 한번더 박수를 보내며 이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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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는 하지마라. "트랜스포머 2 패자의 역습"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6.24 16:38

 올해 여름, 취미란에 영화관람이 적는 모든이의 귀추가 쏠려 있던 영화, 트랜스포머 2 '패자의 역습'이 오늘 6월24일 개봉했습니다. 상암에서 8시 조조로 친구와 관람했는데 친구가 우리가 한국에서 돈내고 본 최초의 2인이라고 계속 강조를 하더라고요. 아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절대 기대하지마세요"

즉 기대를 하지 않고 본다면 정말 볼만할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영상 연출면에서 1편에 못미치지만 그래도 상당한 시각적 만족을 줍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분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린 영화인만큼 많은 기대를 하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엔 합체를 한데..."

라는 소문이 돌면서 많은 기대심을 심어주었죠. 하지만 이 합체씬도... 1편에서 느꼈던 충격적 영상 비쥬얼은 아닙니다. 그냥..

"응? 합체하네." 

어쩌면 그냥 아무 느낌 없이 지나칠 정도의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특히 옵티머스의 합체는 합체가 아닌 거의 아머수준이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가 너무 싱겁습니다. 너무 급 마무리됐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1편에서 느꼈던 어떤 감동적 마무리 같은건 없습니다. 이 또한 다음편을 예견하는듯 끝납니다. 

하지만 처음에 말씀드렸듯이...기대하지 않고 본다면 여름용 블록버스터로 손색없는 영화입니다. 정말 놀라운 비쥬얼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죠. 그런수준의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해내는 그들의 환경이 부러웠습니다. 또한 중간 중간 위트있는 상황도 재미있고요. 이야기의 구성은 1편에 비해 꽉차 있지 않지만 그럭저럭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기대하신만큼의 영화는 아니지만 기다린 만큼 보지 않을순 없죠^^ 꼭 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왠지 3편이 나오면 제대로된 합체 비쥬얼을 볼수 있지 않을까 벌써 부터 기대됩니다.

덧붙여 상암 CGV에서 봤는데 광고를 한참하더군요. 영화를 공짜로 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광고를 틀어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더군요. 당당히 돈내고 보는데 왜 그리 광고를 해대는지...상당히 불쾌했어요.ㅡㅡ

그리고 제 바로 뒷자석에 계신분이 갑작스런 발작을 일으켜 실려나가셨답니다. 혹시 너무 복잡하고 현란한 카메라웍에 심한 어지러움 같은 것을 느끼신다면 피하시길요. 물론 그분이 어떤 연유로 발작을 일으킨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하는 맘에 얘기드립니다. 

그런데 그분이 쓰러졌는데도 대다수의 분들이 그냥 영화에 집중을 하시더군요. 물론 그 상황에서 다른 분들이 크게 도움이 되는것은 아니였지만 화면에만 집중하는 모습들을 보니 비인간적인 부분을 느껴서 씁쓸했네요. 그저 그분 별탈 없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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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고 싶은 그들의 이야기 「시선 1318」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6.12 02:31

초행길에. 비까지는 오는 바람에 15분이나 늦게 상영관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입장은 가능해서 들어가 빈좌석을 찾아 앉았다. 첫번째 영화는 이미 중반부 쯤 상영되고 있었다. 

청소년이 중심 소재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들은 그 주제가 가볍든 무겁든간에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느낄수 있다것에서 내가 청소년일 때부터 지금까지 자주 찾아 본다. 현재 한 중학교에서 아이들 계발활동교사로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시선이 일반 어른들 보다는 좀더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생활 속에서 가지게 된 아이들을 향한 생각과 상당히 맞아 떨어지는 부분들을 영화 속에서 발견하곤 혼자 슬며시 웃기도 했다. 

특히 [은하해방전설]을 연출했던 윤성호 감독의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재]를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이 영화는 어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아이들의 모습이 아닌 정말 아이들 시선에서 만들어진 진짜 청소년 영화다. 한시도 가만이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고 이야기한다. 자신만의 삶의 철학 또한 확고하다. 대화는 정말 난데 없이 불쑥 불쑥 튀어 나오고 주워들은 소문들은 각자에 의해 모두가 진실이 된다. 그러니 이해 할 수 없는 우주라 표현한것이겠지. 정말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여학생 둘이 대화를 하다 한명이 담배를 무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지금도 문듯 문듯 떠올라 사람을 웃게 만든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그 장면이 생각나 웃고 있다. ㅋ

또 나를 영화 끝나고도 문득 문득 웃게 만든 장면이 있는데 [달리는 차은]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어찌보면 흔히 보던 장면인데 그런 심각한 상황에서 연출되니 정말 의외의 웃음이 나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청소년의 심리를 정말이지 잘 읽은 영화는 [유앤미]다. 그만두고 싶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마음. 사실 그것은 청소년때 창문 밖을 보며 눈물 흘렸던 사람들이면 공감할만한 부분이다. '내 존재를 내 스스로 느끼지 못하니 무엇을 그만두어야할지 모르는 것이 아닐까?'라고 내 청소년기를 돌아보며 생각해 보았다. 

[진주는 공부중]은 반밖에 보진 않았지만 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병명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병은 왜 있는거야?' 어찌보면 그저 그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그 아이를 가르치기 힘들기에 분류해 놓으거 아닌가?예전에 흘려 들은 얘기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현대의학의 기준으로 봤을 때 ADHD라고 한다. 물론 가설이지만 그는 매우 많은 미완성작을 남겼으며 정말 많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점을 보면 매우 일리 있는 말이다. 어쨋든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어른들이 만든 아이들의 기준은 그저 자신들의 편리를 위한 것이지 아이들의 입장은 아니다. 그러니 창의고 뭐고 다 죽는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릴레이]...극중 생물 선생님의 말처럼 고등학생의 나이는 생물학적으로 가장 임신하기 좋은 때다. 그저 그것을 사회가 막고 있는것 아닌가? 학교에 보육시설 만들어 관리하면 안되나? 아이를 낙태하고 입양보내는 것보다 그것이 더 자연스럽고 더 사람다운 것 아닐까?

사실 이 영화는 대중적이지는 못하다. 그렇게 느낀 것은 시사회에서 자는 사람을 상당히 많이 발결했기 때문이다. 즉 내 주관적 판단이 아닌 객관적 관찰로 봤을때 대중적인 재미를 찾는다면 그렇게 추천하고 싶진 않다. 나는 정말 재밌게 봤지만 그것은 어디 까지나 내 취향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소소하고 어찌보면 이해할려고 해도 이해 할수 없는 감수성을 느끼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겠다. 특히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재]는 적극 추천이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가서 보게 되어 잠을 자더라도 그 영화 할때는 깨워달라 얘기하자. 그 영화,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정말이지 재기발랄한 화면들로 가득하다. 어찌보면 어른들이 청소년을 이해하는 것은 그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청소년은 이해의 대상이 아닌 그저 하나의 존재의 대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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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쿄]로 본 인간의 소외,존재,파괴본능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5.20 11:57
  어렸을 때 난 여행이란 쓸데 없는 고생 쯤으로 여겼었다. 어짜피 사람 사는게 거기서 거기인데 뭐하러 그걸 보러 다니냐고...뭐 지금이야 못나가 안달났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항상 일본이라 이야기 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란 나라의 사람들은 그냥 사람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든 잡다한 것을 다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아주 독특한 문화를 재생산하며 각자만의 독특한 패션이 넘쳐나는 나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성과 어른들도 만화에 열광하는 나라. 겉으로는 상냥하지만 히키코모리와 이지메, 그리고 묻지마 살인의 나라. 이런 이미지가 일본을 희안한 동네로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그 동네는 내게 희안한 동네다. 부럽기도하고 무섭기도 한 동네 일본. 그 동네중 Tokyo라는 곳을 세명의 감독이 찬찬히 살피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 아주 단순하다. Tokyo...

물론 단순히 도쿄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아닐것이다. 도쿄에서 시작하여 인간 사회로 확장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묻지마 살인은 우리나라에도 있으며 미국은 대규모로 이루어지지 않은가?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이 그런 모양새를 좀더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런 점이 세감독에게는 깊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그닥 많은 사전 정보 없이 영화 보는 것을 즐기기에 나온지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셋 옴니버스영화의 감독이 누군지와 주인공 중 아오이유우가 등장한다는 것을 빼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한명씩 감독을 맞혀 보았다. 각 감독 스타일이 너무나도 뚜렷하기에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첫 영화는 요즘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 미쉘공드리의 작품이었다.

2009/03/29 - [아티스트백서] - 뮤직비디오계의 발명가 Michel Gondry


Interior Design
-경쟁과 소외

 존재감. 사람의 가장 큰 지탱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드리의 눈에는 사회가 발전하고 미디어가 발전함에 자신의 존재감을 감추려는 역행의 모습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감독으로 등장하는 남자는 남보다 잘하는 것을 만들어야하는 포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렇게 함으로 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그의 여자친구는 그와 반대로 자신의 소소한 것들로 부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한다. 하지만 첫 영화 상영회가 끝나자 점차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들기 시작한다. 그저 자신은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점점 빠지고 남들의 시선에 대한 어떤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그저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지만 자신의 취미를 남의 시선에 방해 받지 않고 즐길수 있는 의자로 변화한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만 느끼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남들 보다 잘하는 것에 의한 존재감]이란 바로 일본이 가지고 있는 경쟁에 대한 강박을 표현한 것으로 느꼈다. 물론 이것은 일본뿐만 아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철저히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런 경쟁사회에서 경쟁적이지 않은 인간이 경쟁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면서 생기는 불안감을 적절히 표현한 영화라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그 불안에서 해소되어 다시 편안함으로 되찾은 의자라는 인생은 깊은 생각을 만들어낸다.

 인간으로 살것인가? 아니면 편안하게 살것인가?


Merede[똥]
-잠재의식속 파괴본능의 분출과 배설

이 영화는 레오까락스의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2가지를 상상했다. 분명 매우 그로데스크할 것이고 분명 드니라방이 출연할 것이라 예상했다. 너무나도 기분좋게 두 가지 모두 적중했다.

 초반 부터 광인이 나와 설쳐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바로 레오까락스라 생각했으며, 조금 시간이 지나고 그 광인이 드니라방이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도입부는 나쁜피에서 데이빗 보윗의 모던러브에 맞춰 드니라방이 길거리를 뛰어다니던 롱테이크 씬과 겹쳐지는 장면이었다.


저 여자분들이 입은 빨간색은 우연히 입은 것이 아니며 드니라방이 입은 녹색 옷도 그냥 입힌 것이 아니다. 저 장면을 다시 보면 알겠지만 군데 군데 빨간 간판이 유난히 많다는 것을 알것이다. 누벨이마주의 대표적 인물로 소개되는 레오까락스는 붉은색의 강렬함을 상당히 좋아하며 영화에서 자주 표현된다.하지만  나쁜피에서야 회색계통 벽에 드문 드문 붉은색을 표현한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지만 도시에서 드문 드문 보이는 붉은색이 인지 될려면 드니라방의 녹색(보색대비)옷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광인의 횡포는 계속 이어지고 순간 사라진다.

 인간이 인생에서 지나치기 힘든 덫이 있다면 바로 "파괴 본능"이다. 순간의 가치관의 대립, 아니면 그냥 삶이 지루해서, 뭐 이유는 많다. 쌓여있던 수많은 억압의 에너지가 분출되어지는 기회는 수없이 많다. 그런 여유 구멍도 너무나 많다. 그런 구멍이 바로 이 영화에서는 맨홀로 그려지고 있다.

일본인과 직접 이야기해 본적도 만나본적도 없지만 들은 이야기로는 매우 친절하다 얘기한다. 겉으로는 그렇게 친절하다 얘기한다. 하지만 그렇게 참은 감정을 어디에 쌓아두겠는가? 그 화는 언젠가는 어디에서든 어떤방식으로든 터지기 마련이다.

 사람 뿐만 아니다. 일본 자체가 그런 역사가 땅밑에 묻어 있다. 지하에 탱크와 수류탄등 전쟁이 남겨 놓은 것들이 그대로 쌓여있다. 그것들은 언젠가는 터진다. 그리고 영화에서 실제로 터졌다. 바로 묻지마 살인이다.

 또한 그 광인은 꽃과 돈을 먹는다. 즉 겉치레(또한 일본의 국화는 국화다.또한 일본의 의리와 성실을 상징하기도 한다.)와 자본이 그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어찌보면 그런 겉치레와 돈이 그런 광인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얘기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광인은 바로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속내가 광인의 것이라는 것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겉만 멀쩡하게 하고 다닌다.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겉으로 꺼내면 광인 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런 속안에 가지고 있는 광인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언어 역시 다르다. 그것을 통역해주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마치 이것은 인간의 다중적인 성격으로 묘사되어진다. 그둘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잘 관찰하면 알겠지만 두 사람의 하얀눈의 위치는 각기 다르다. 광인은 오른쪽, 변호사는 왼쪽. 즉 하나의 인격이라 묘사되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관객은 그렇게 등장한 변호사가 광인이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지에 대해 전혀 알수 없다는 것이다. 둘이 무슨 작당을 했는지 조차 알수 없다. 그 변호사는 광인이 죽지 않고 깨어났을 때 조차 놀라지 않는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들 뒤를 쳐다볼 때 혼자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즉 변호사는 모든것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혹은 그 사라진 광인이 변호사와 하나의 인격으로 합쳐진것일 수도 있다.

그 광인의 이름은merde,똥이다. 즉 사회가 배설해야 할 무엇이다. 하지만 배설되지 않는 다는 얘기다 배설을 할려고 해도 배설되지 않고 세상에 머물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신도 이제 늙었다"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다.


 이 영화를 좀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일본자체를 하나의 사람이라 생각해도 될것 같다.-작품을 이해하는 것에 위험한 발상일수도 있지만 좀더 쉬울수 있다는 내 제안이다. 다시 말해 광인은 인간안에 내재되어있는 파괴본능의 요소이며 겉은 번지르하게 꾸며 놓은 일본의 시간 폭탄과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다.

히키꼬모리
-인간의 희망을 위한 약진

봉준호 감독이 부러웠다. 이유는 아오이 유우와 1미터 안에 같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오이유우는 이쁜 얼굴은 아닌데(여자분들이 욕할지도 모르겠군) 그저 묘한 구석이 있다. 정말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게해주는 배우다. 연기는 잘모르겠지만 그래도 저예산 영화만 쫓아 찍는 것만 보면 배우로서도 자기 이미지를 잘 알고 관리하는 것 같아 좋다. 그냥 마냥 좋다.^^


 이 옴니버스 영화의 구성을 이렇게 해놓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인간 소외의 시작 그리고 분출 그리고 해소의 구성이다.

 봉준호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호와 상징의 장치들이 많지 않다. 있었도 그렇게 영화를 이해를 못할 정도로 배치되어 있지 않기에 별 무리없이 감상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별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사실 위의 두 프랑스 감독의 영화도 본인이 느끼는 해석이지 그것이 모든 관객에게 강요할수 있는 해석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가 느끼는 각자의 느낌이 있을 것이고, 또 영화 관람의 중요점을 상징주의적 접근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볼수도 있다.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어쨋든 영화는 남주인공의 인류애(Love)라는 의미로 하나의 약진을 한다. 한 사람으로 부터 시작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그런식이다. 앞의 두영화에서 말하는 암울한 인간상에 대한 구원의 이야기이며. 그 해답을 봉준호는 Love라 얘기하고 있다. 사랑...
좋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좋은 영화들이었다. 미쉘공드리야 본인이 워낙 좋아하고 아끼는 감독이라  그냥 마냥 좋았고, 레오까락스는 폴라 X 이후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 뭐하나 했는데 내게는 좋은 인사와 같은 영화였다.  그리고 대중의 많은 관심에 비해 그리 큰 관심이 없던 내게 봉준호는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이 세 감독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며 봉준호의 영화 마더의 시사회 당첨을 기대해 본다.


이글은 Cinematiq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cinematiq.co.kr/bbs/view.php?id=reviews&no=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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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보그 그녀>지만 괜찮아.^^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5.14 13:24

풀롯과 구성 그리고 연출

엽기적인 그녀를 보고 차기작을 상당히 기대했었다. 하지만 내 기대는 처참하게 짓밝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과연 같은 감독이 만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양한 이벤트성 연출은 매우 괜찮았지만 그것을 이어주는 구성이 매우 허술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것은 중반을 넘어서면 장면들이 그냥 다 따로 노는 것 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번의 사이보그 그녀도 감독의 고질적인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순간 순간의 이벤트성 연출은 훌륭했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가 아구가 맞아 들어가지 않고 엉성하게 본드로 묶어 놓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묶어 놓은 듯한 느낌은 드니 말이다. "여친소" 볼 때 당시에는 이게 영화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사실 작년에 개봉한 무림여대생도 마찬 가지였다. 엽기적인 그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 보였었다. 제작은 더 먼저했던 "사이버 그녀" 역시 "엽기적인 그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재면도 거의 그대로 가져오고 있다. 타임머신과 타임 캡슐. 그리고 비범한 여자친구...

 하지만 정서적 공감면에서는 다른 영화들 보다는 나았다. "여친소"와 "무림 여대생"은 너무 갑작스러운 플롯의 전개가 그런 감정선을 다 깨트리는 반면에 그래도 이 영화는 그정도는 아니였다. 적어도 관객이 스크린에 발은 살짝 담가놓을 정도는 되었다. 그렇다고 크게 여운이 남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저 그런, 자주 봐왔던 사랑이야기니.

그래도 한번쯤은 봐줄만한 영화라 생각한다. 적어도 "여친소"와 "무림여대생"보다는 나았으니.^^

그래픽과 후반작업(Post Production)

 컴퓨터 그래픽적 요소는 처음에는 좀 욕 나왔지만. 생각해 보면 장면 컨셉과 어울리는 퀄리티를 일부로 낸것으로 생각이 들어 그 욕을 철회했다. 더욱이 후반부 지진 장면은 상당히 괜찮은 퀄리티였다. 10억엔을 들였다는데 돈 좀 드린 티가 팍팍 난다. 하지만 가끔 나오는 회상부의 그 뽀샤시 컬러 컨셉은 ㅜㅜ
일본 영화에 너무 자주 나온다..일본 사람들은 그게 이쁘다 생각하는건지..ㅜㅜ

배우

 사실 일본어를 모르니 자막 읽느라 연기 평가는 좀 모하다 싶다..하지만 코이데 케이스케는 노다메에서 티파니를 쳤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이미지 매칭이 안되었다. 즉 영화속 주인공으로 정말 잘 녹아 들었다. 물론 이 배우의 다른 작품을 노다메 밖에 보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여자 배우 아야세 하루카는...그냥 말이 필요 없이 이쁘다..개인적으로 고등학교 때 내 짝 사랑과 닮았다.^^ 이쁜 것 이외에는 기억에 없다..^^ㅋ

시간 여행

이 영화는 시간 여행에 대한 논리로 다가서면 상당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영화이지만 이 영화가 그런 과학적 기반으로 제작된 것도 아니기에 그런것을 가타부타 걸고 넘어지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아 그 얘기는 빼겠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많은 감동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중박 정도는 되었다 생각한다.그냥 편하게 보고 잠시 느낄수 있을 정도이며 관객의 몰입과 기대를 철저히 배신하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한번쯤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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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디워>에게도 의미는 있다.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5.02 12:04
오늘 "디워"에 대한 "아라"님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아라"님의 블로그에는 댓글을 남기는 곳이 없어 트랙백을 만듭니다.  제가 오늘 본 글입니다.

디워 수익의 진실 (해외 소비액 대비 수출액) [추가 2009.2.3]

트랜스포머2 예고편과 외국인에게 철저히 외면받은 디워


저 역시 디워를 보고 극장에서 걸어 나올때 한숨이 나왔습니다. 컴퓨터 그래픽부분(컴퓨터 그래픽의 분야는 다양합니다.하지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컴퓨터그래픽으로 통칭합니다) 중 절반은 말도 안되게 엉성했으며 특히나 이야기 구조는 어린이 영화 수준에도 못미치는 전개였습니다. 그렇지만 전 이 영화를 흥행에 대한 결과적인 부분과 질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 평가할 수 없을 정도의 의미가 없는 데이터입니다. 하지만 시도 자체에 대한 의미는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문을 하겠죠. 시도??흠. 오히려 해외 진출 시장을 얼어 붙게 만든건 아니고?

어떠한 부분에서든 실패는 존재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아주 흔한말이 대변해 주는 것은 실패에도 의미가 있으며 그안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도 해보지 않고 안된다와 시도해 보고 "아!이렇게 하면 안되는 구나"와는 엄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또 이렇게 반문을 하겠죠.
-실패치고는 너무 많은 출혈이 있는것은 아닐까?
  적어도 예상은 했어야하는 것은 아닐까?

 예전에 주워들은 얘기를 인용하자면 1명의 예술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100명 아니 1000명에게 투자를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아이가 후에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아이가 부모가 둘다 위대한 예술가일지라도 실패할 수 있으며 두 부모 다 길거리 노점을 운영을 한다해도 아이는 위대한 예술가가 될수도 있습니다. 영화의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가 개봉하고 대중들의 평가가 이어집니다. 그 결과는 아무도 모릅니다. 투자자들도 전문적인 투자회사들도..그 아무도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스타워즈 에피소드 4는 시사회 평가에서 역대 최악 영화라는 악평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은 어떻습니까? 영화의 성패는 개봉이 되어야만 알수 있지 그전에는 그 누구도 알수 없습니다. 단순히 시나리오와 제작진의 능력과 그전의 성과만 보고 투자를 한다는 것은 노점상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에게는 투자를 하지 말아야한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런 얘기를 하시겠죠...
- 우리나라에서 100편이 넘는 영화를 찍을수 있는 제작비를 디워 하나에게 몰아준다며 더 많은 가능성을 죽이는 것 아닐까?

물론 그럴수도 있습니다. 디워로 인해 "동파리"같은 영화들이 빛을 못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00편의 영화에게 각각의 의미가 있듯 디워 한편에도 의미가 있다 생각합니다. 단순히 양팔 저울에 100편의 영화와 디워 한편의 영화를 올려 놓고 그 무게를 잴수는 없습니다. 위에 링크한 "아라"님의 글을 보면 괴물은 컴퓨터 그래픽을 호주에 외주를 주었고 디워는 해외에 사무실을 내어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제작비면에서 봤을 때는 해외에 수주를 주는 것이 더 이로울수 있었게죠.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도 우리나라의 영화 산업 분야입니다. 이렇게 매번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해외에 준다면 우리의 그래픽 산업 기술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단순히 영화 제작당시에 지출된 돈만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후에 성공한 케이스의 영화를 만들기 위한 시행착오도 있어야합니다. 우리나라 그래픽 기술은 안돼. 이런 퀄리티로 무슨 영화를 만들어. 이런 소리만 반복하면 결국 우리나라 컴퓨터 그래픽은 사장될테고 좋은 인력은 외국으로 전부 빠져 나가겠죠.-사실 외국에서 근문하는 TD(기술감독)분들이 많습니다- 디워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시도이며 그 파이프라인(제작공정)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국내 컴퓨터 그래픽 분야의 성장에는 다른 케이스도 있습니다. 바로 중천이죠. 우리나라 컴퓨터 그래픽 작업에 있어서 중천이라는 영화는 빼지 않고 이야기 합니다. 12개의 포스트 프로덕션(영화 후반작업하는 곳)이 모여서 만들어낸 합작품이죠. 그래픽 작업에 있어서도 외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흥행에는 실패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에 각 포스트 프로덕션 업체는 영화제작에 투자된 돈으로 얻은 경헙을 바탕으로 좋은 성과를 내며 성장해나가고 있습니다. 중천에 참여한 업체(Digital Tetra,Footag,Macrograpg)들은 포비든 킹덤에 VFX로 100%참여하였습니다. 또한 FX Gear라는 업체는 슈렉 3에 옷감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해주는 플러그인을 제공하였습니다. 만약 이들이 중천의 흥행 실패에 가려져 어떠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대단한 손실이 아니까요? 태권브이 실사 영화는 기대조차 할 수 없겠죠.- 이 영화 역시 국내 포스트 프로덕션들이 모여 작업하고 있으며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분들도 다수 들어와 작업하고 계십니다.

디워의 영구아트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디워의 컴퓨터 그래픽은 제작기간이 너무나도 길었기 때문에 진짜 들쑥 날쑥입니다. 즉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영화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디워의 흥행실패만 보고 앞으로 전혀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큰 손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에 쌓았던 경험과 노하우를 전부 사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실패한 하나의 영화>만 가지고 <빛을 보지 못한  성공할 가능성 있는 100편의 영화>와 저울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패한 디워>는 100편의 영화 만큼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업기반, 아니 모든 사회와 삶은 미래가 있고 과거가 있기 때문에 한 순간만 보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되새겨봐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심형래 감독과 영구 아트는 많은 노력을 해야합니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 작가를 둬야한다 생각하고 연출도 심형래 감독 단독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차기작은 좋은 작품으로 만날수 있지 않을가 기대해봅니다.

아침에 본 글에 대한 트랙백이 엄청 길어졌네요^^ㅋ

2009/04/25 - [개인서랍/주저리] - 관심이나 있으시겠냐만은...한국 영상 컨텐츠 제작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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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사육 1 (完全なる飼育,1998)-The Perfect Education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5.01 12:16
[완전한 사육 (完全なる飼育: The Perfect Education, 1998)]
감독 : 와다 벤
출연 : 다케나카 나오토, 히리지 코지마, 기타무라 가즈키
장르 : 드라마

- 육군 병장 때 굴러다니는 잡지를 주워 들고 탐독하던중 눈에 띄는 제목이 있어 훑어 보았다. /당신이 놓친 영화 걸작/이었나? 그 타이틀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중 눈에 띈 것이 이 영화 완전한 사육이었다. 엄밀히 말해
이 영화는 아니고 2001년작(국내 개봉은 2004년) 완전한 사육-사랑의 40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 당시 그런 이 영화가 시리즈인 줄 전혀 몰랐고 근래에 우연한 기회에 이 영화들을(총 5편) 다운 받았다. 영화 받을 때는 '이게 다 영화야?','TV판 드라마인가?'식으로 의심을 했지만 보니 전부 영화 였다.

-일본에서 실재 있었던 사건을 '마츠다 미치코(松田美智子)'라는 작가가 <여고생유괴사육사건(女子高生誘拐飼育事件)>으로 소설을 썼는데 이 소설을 각색한것이 이 영화들이다. 책을 읽지 못해 원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5편 전부 볼만 했다.

-제 1편은 98년도에 일본에서 개봉했지만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유는 잔혀 모르겠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2001년작 사랑의 40일만 국내 개봉했다는 점이다.

- 이 영화는 5편 중 가장 밝은 영화다. 유괴, 납치 그리고 집착, 완전함등을 이야기하는데도 불구하고 위트를 잃지 않은 영화이다. 마치 프랑스의 블랙 코미디를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남자 주인공의 납치 이유가 가장 납득적으로 설명 되어진 영화이다.

- 그 반면에 여자 주인공이 탈출할 기회를 버리고 집에 갖혀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비록 잘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안정적인 가정환경에 아버지도 있는 여자애가, 아직 남자 주인공에게 정을 주지 않은 상황에서 탈출 할 기회를 버리는 점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5편의 시리즈중 가장 격렬한 정사신이 나온다. 또한 고2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발육 상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편에 나오는 여주인공 모두 발육 상태가 좋지만 1편은 심할 정도 였다.^^그리고 5편의 여자 캐릭터 중 가장 활발하고 생기 넘치며, 반면에 과거의 상처나 외로움은 보이지 않는 일반적 여고생이었다.그래서 위에서 말한데로 영화가 이끌어 가는 구성의 빈틈이 보일 때가 많았다. 또한 가장 관습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가 5편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 였다.

-다케나카 나오토라는 배우는 완전한 사육 5편 시리즈를 걸쳐 전부 출연하는 배우이다. 다른 것을 다 바뀌어도 이 배우 만큼은 역이 바뀌어도 계속 출연한다. 이 영화 시리즈에 어떤 애착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특이한 경우다 그것도 계속 배역을 바꾸어서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여고생을 유괴강금하는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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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예술 영화?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4.29 22:24

 영화를 혼자보러간다는 것에 익숙치 않기에 친구에게 같이 보러가자 간곡히 부탁을 했다. 중요한것은 간곡히 부탁을 했다는 점이다. '일반,보통,평범'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란 제목의 영화는 낯설뿐 아니라 안다손 치더라도 보기 껄끄러운 영화임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기전 이대 앞 버거킹에서 치즈와퍼를 뜯으며 그 자식은 "다크나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리 늘어 놓았다.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라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 난 "그저 그랬다"라는 말을 계속 받아쳤다. 하지만 다크나이트는 그녀석의 머리속에서 잘 만들어진 영화 자리를 비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다크 나이트"는 그저 그런 영화다.

극장에 10분 늦게 도착했고 그녀석은 극장에 자리 잡고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끝날때까지 잠들어있었다.


 이 영화를 보통 예술영화라 말하지만. 과연 스크린 앞에서 눈을 감고 있는 그 녀석에게도 예술일까? 무엇이 예술인가?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일까? 영화 보는 내내 옆에서 잤던 그녀석에게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화보다 "다크나이트"가 더 잘만들어진 영화일것이다. 물론 예술이란 단어가 꼭 "잘"이란 부사와 어울리라는 법은 없지만 어쨋든 그 녀석 마음 속 영화의 순번에서는 다크나잇이 이 영화보다 앞서있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다르다. 내 바로 옆에서 함께 자라온 형제 역시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나와 다를 것이고 무엇인가를 평가하는 잣대 역시 모두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깨닫지 못한다.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일반,보통,평범"이 가장 사회에 적합한 규범이라 착각한다.

 라이프니츠는 이런얘기를 했다.
 "인간의 마음은 창이 없는 방과 같다"

 이 영화는 기성세대들의 그런 면모들을 부각시켰다. 선생님은 지정된 공책에 꼭 숙제를 해와야한다는 규칙과 규범은 가지고 있고. 엄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숙제를 먼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앞뒤 상황 상관 없이 그저 자신의 말에 순종해야한다고 말한다. 이들 각각의 규칙들이 톱니 바퀴처럼 맞물려 같이 돌아간다면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주인공이 짝의 공책을 집으로 가지오는 사건을 계기로 그런 규칙들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 이쪽 말을 따를려고 하면 저쪽에서 아니다라 얘기를 하고, 저쪽 얘기를 들을려고하면 또 이쪽에서 뭐라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얘기인가? 그 어린 나이에 그것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사회인것을... 수많은 가치관이 하루에도 수없이 부딪히는 곳이 그 아이가 살아가야할 삶의 공간인것을...

결국 이리저리 가치관에 떠밀리다 어떠한것도 제시간에 해내지 못한다. 친구에게 공책을 돌려주는 것도, 자신의 숙제를 하는 것도, 엄마의 심부름도. 그 어떤것 하나 해내지 못한다.

 집에 돌아와 그 주인공아이는 자신의 숙제를 할려고 펜을 들때 밖으로 연결된 문이 바람에 열린다. 빨래줄에 널려있던 옷가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엄마는 그것을 걷어들인다. 그때 깨닫게 된다.
"빨래는 꼭 밖에 널어야한다.하지만 바람이 많이 불면 걷어야한다"

즉 가치관이 충돌할 때에는 상황에 맞게 대처를 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작은 깨달음으로 그 아이는 큰 성장을 하게된다. 사회가 무엇인지를 장황하게 설명할순 없어도 스스로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림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글 초반에 얘기한 것처럼, 예술영화에 대한 고정된 기준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내 말은 이 영화와 통하고 있다. 예술 영화에 대한 절대적 가치 기준 없다. 어느 기준에 따르냐에 따라, 어떠한 사람이 보느냐에 따라 예술영화는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친구와 다르게 내게 있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란 영화가 "다크나이트"보다 더 깊게 뿌리 내린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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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잉] 결정론적 운명론과 절대적 예언 그리고 에덴으로의 회귀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4.18 19:55
결론 부터 얘기하자면 예고편에서 본 스펙타클한 스케일의 영상을 원하신 분이라면 비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주위 사람들 중 많은이가 "낚였다"다라는 말을 하며 나오던군요. 저는 예고편을 보지 않았기에 무슨 얘기인가 했는데. 후에 예고편을 보니 거기 나온게 다더라고요. 역시 큰 기대와 예상이 어긋나면 그만큼 실망도 큰 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영화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다가갔을 때는 돈주고 보기 아깝다. 또는 시간 아깝다라는 평은 아니라는 점에서 추천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작년에 조금 기대하고 봤던 <지구가 멈춘날> 에 비하면 철학적 깊이도 있고 큰 구성의 빈틈 없이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그렇다고 부족한 점이 보이지 않았는가? 그건 아닙니다. 영상 초입부 연출은 연출하려는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의 분장과 편집, 그리고 앵글과 음악이 모두 어울리지 않게 믹스되어 마치 생밥에 케첩을 뿌려 놓으듯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수 없었습니다. 또한 매번 기괴한 사람들(메신저)이 등장할 때 마다 그 영상 연출은 너무 싼티가 나서 손발이 오그라 들더군요. 너무 정면 샷으로 일관한 평범한 앵글에 긴장감 넘치는 음악, 허옇게 뜬 분장. 뭔가 서로 박자가 맞지 않아 서걱 거리는 느낌이었습니다.그 장면이 나올때
마다 이 영화가 과연 크로우를 연출한 사람의 영화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더군요. 물론 당시는 젊었을 때였고 한창 CF와 뮤직비디오로 그 감각이 물이 올라있을 때이니 그렇겠지만서도.. 뭐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그래도 저 몇장면 빼고는 평균 이상의 영상들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포스팅된 제목 처럼 세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결정론적 운명론, 예언, 성서...
영화를 보기전에 혹은 보고 나신후 이해를 돕고자 이것에 대해 좀더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결정론적 운명론


결정론적 운명론이란 세상이 시작할때 부터 끝날때까지의 모든 역사가 다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1+1=2
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 것 처럼(물방울이 두개 합쳐 하나가 된다는 얘기는 그만두고)

과거+현재=미래
남+나=또 다른 나
이유+환경[배경]=사건
.
.
.
.
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 공식을 다시 풀어보면
과거(=더욱 과거+좀더 과거)+현재(=좀더 과거+과거)=미래
남(=제3자+남)+나(다른 제 3자+그전의 나)= 또 다른 나
이유(=다른 이유+환경)+환경(-시간+그전의 환경)=사건
.
.
.
즉 결국 저것을 끝까지 풀어 보면 세상의 최초의 모습이 나올것이고(빅뱅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모든 것은 태초가 원인이 되어 결과를 만들어졌으며 앞으로 그럴 것이다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해졌으니 당연히 예언도 가능하고요.


 테드(니콜라스케이지)는 이것을 믿지 않고 무작위론을 믿고 생활합니다. 목회일을 하시는 아버지도 좋아하지 않고요. 하지만 이야기는 결국 결정론적 운명론이 맞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정해진 운명의 과정일 뿐이라고

예언


앞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결정론적 운명론은 예언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래알 한알까지 포함해 세상의 모든 과거와 그 사이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죠. 뭐 불가능해 보이지만 인간의 논리로 인간 조차 설명할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기에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예언을 합니다. 그것을 예언이라 느끼지 않을 뿐이죠.

 예를 들어 도로에 차가 달려오고 있고 내가 걸어서 교통사고가 일어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건너죠. 이것 역시 예언이죠. 결국 미래에 대한 판단이니깐요.쉬운 판단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이 그렇게 쉬운게 아닙니다. 자동차가 달려오는 속도와 가속도,도로의 상태,운전자의 인지 능력과 내가 걷거나 뛰는 속도를 전부 계산해야 나올수 있는 데이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 몇초안에 판단하죠. 사실 불가능한 이야기인데 말이죠.

그렇다면 예언을 하는 것 역시 정해진 것일까요?
아래 영상을 보시죠.


위의 영상은 메트릭스에서 오라클과 네오의 대화입니다.

 "내가 말을 안했어도 꽃병이 깨졌을까?"

 즉 예언 역시 인간의 역사이며 그 예언으로 미래를 바꿀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예언으로 미래를 바꿨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겠죠. 예언으로 미래가 바뀌는 것이 원래 결정되어진 미래니깐요. 예언이 맞는 것도 예언이 틀리는 것도 모두 정해졌다는 것이 또한 결정론적 세계관입니다.

성서(종교적 코드)

이 영화 전체가 성경에 기반하고 처음 부터 끝까지 그 안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창세기 9장 15절]

다시 말해 종말은 물로 하지 않겠다는 말이죠. 성경전반에 불로 멸한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영화와 관련된 구절입니다.
Elijah and Elisha, Michael D. O’Brien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라기 4장]

아이들이 예언자가 되고 아이들이 구원되는 이야기는 다음 구절에 기반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태복은 11장 25절]

이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분명히 느끼실 겁니다.  이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바로 성경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요. 보기전의 분도  참고하시길요. 기독교에 반감 있으신 분들은 뭐..알아서.ㅋ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앞에서 얘기했듯 돈주고 볼만한 영화입니다. 전 예고편을 보지 않은 관계로 시각효과역시 만족 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장면 대단합니다.ㅋㅋ참고로 포스트 프로덕션이 미쉘공드리와 많은 작업을 같이 했던 BUF이더군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제목을 <노잉>이라고 하지말고 33이라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보신분만 아실거예요) 물론 숫자로된 영화들이 워낙 많아 싸 보일수도 있고 검색하기에도 안좋아 마케팅적으로도 별 좋진 않겠지만 의미로서는 더 괜찮았을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몇 몇 장면을 빼고는 맘이 흡족한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결정론적 운명론을 믿는 사람이라 공감대가 잘 형성되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제게 그러죠. 결정되어진 삶이라 생각하는데 무슨 재미로 사냐고요. 전 이렇게 대답합니다."결정되어진 삶을 모르니깐 사는거라고"요. 결정되어진 삶을 안다는 것은 극에 나온 어린 예언자처럼 삶의 고통이겠죠. 전 모르기에 그저 잘 살아갑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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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와 영웅의 조건.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3.26 16:08

1. 들어가는 말

 

 그리스 문화, 특히 그리스 신화는 기독교 사상과 함께 서양 문화와 사상을 이끌고 가는 중심축이라 생각합니다. 이 신화의 가장 큰 맥락은 물론 신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상당히 많은 신이 등장하고, 그들끼리 전쟁도하고 결혼도 하는, 그리고 희로애락이 있는 우리가 전반적으로 알고 있는 전지전능한 모습과는 매우 거리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신화에 쉽게 발견하는 것이 신과 그 위치를 견줄만한 것이 바로 ‘영웅’입니다. 여기서 그리스 신화 속에 존재하는 ‘영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1997년에 디즈니에서 제작되어진 애니메이션 만화 ‘헤라클레스’와 원래의 신화와 비교하여 신화에서 얘기하는 ‘영웅’의 의미를 알아보려 합니다. 비록 신화에 대한 짧은 지식으로 접근을 시도함과 좁은 식견으로 그리스 신화를 바라봄에 있어서 그 미흡함과 부족함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2. 디즈니 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

 

 이 애니메이션 헤라클래스는 역시 아이들 보는 만화 영화라서 인지는 몰라도 원래 신화와는 다르게 선악의 개념이 확실히 나누어져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올림프스 산에 사는 신들을 ‘선’의 개념으로, 그리고 그 이외의 신에 대해서는 ‘악’의 개념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한 ‘권선징악’의 구성을 띠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역시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식의 ‘교육용’ 비디오라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헤라클래스라는 이름과 제우스가 그의 아버지라는 것, 그리고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의 비슷함을 빼고는 완전히 재구성한 느낌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권선징악’의 개념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다가 잘못하면 신화에 대한 몰이해를 가져다주지 않을까하는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앞에서 말했듯이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잘 적용 시킨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출생의 비밀, 그리고 조력자와의 만남, 수많은 시련(혹은 전투)사이에서 승리. 이것이 잘 살아 나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킬레우스와 같이 전투 중에 수많은 사람들 중에 살아남는 인원이 아닌 단순히 저승의 신 하데스와의 승부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후에 모든 시련을 견디고 신의 반열 들어 갑니다. 하지만 디즈니 만화답게 사랑하는 멕과의 삶을 택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3. 애니메이션과 원작과의 차이점-영웅의 조건에 비추어

 

 원작과 이 애니메이션은 상당한, 아니 새로 쓰여 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상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 헤라클래스의 출생입니다. 원작과 애니메이션 모두 출생이 보통이들과 매우 다릅니다. 그 다른 점이란 신의 아들이라는 것이죠. 이것은 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잠깐 언급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중심인물 아킬레우스에게서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헤라클레스의 아버지는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신입니다. 하지만 원작과 다른 점은 어머니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은 제우스의 누이이자 세 번째의 정식 아내 헤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제우스와 아르고스의 왕녀 다나에 사이에서 태어난 페르세우스의 아들 엘렉트리온의 딸 알크메네입니다. 다시 말해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이자, 증 증손자인격입니다. 또한 헤라클레스는 애니메이션처럼 태어 날 때부터 신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신의 피를 받은 인간에 불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원작이건 디즈니 애니메이션이건-어느 신화에서나 볼 수 있는 영웅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인 혈통이라는 영웅의 공통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그리스 신화 뿐 아니라 많은 신화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인데 우리나라 단군신화나 3국왕들의 신화를 보면 신의 혈통이거나 그와 유사한 혈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영웅으로의, 더 나아가 국가 통치에 있어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애니메이션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출생 시 상당히 이상한 점이 발견되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제우스가 알크메데와 있을 때 헤르메스에게 시켜서 달이 지려할 때 달을 다시 떠오르게 했습니다. 즉 3번의 밤을 거친 것이죠. 이것은 우리나라 신화에서도 발견되어지는데, 그 예가 박혁거세와 고주몽의 출생으로 기억됩니다. 즉 이런 출생의 비범함 역시 영웅으로써의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작과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나타나는 큰 차이는 애니메이션에서는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매우 사랑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하데스와 적대 관계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원전은 이것과는 다릅니다. 헤라는 매우 헤라클레스를 싫어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하데스가 헤라클레스를 죽이려 보낸 뱀-페인과 패닉이 잠깐 뱀으로 둔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은 사실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죽이려고 보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애니메이션처럼 손쉽게 두 뱀을 해치웁니다. 이것은 신화에서 주로 보여 지는 어릴 적 보통 이들과의 다른 점을 묘사 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헤라클레스가 어릴 적 매우 힘 이 강해 사고뭉치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가장 눈에 띠는 헤라클레스의 어릴 적 비범한 재증을 그린 것으로 같이 태어난 에우뤼스테우스는 활을 잡는 것을 가르쳐주면 과녁을 가늠하는 것을 알았다 할 정도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지만 헤라클레스는 눈을 가리는 태양이 짜증난다고 태양을 향해 활을 겨누고 놀란 태양은(헬리오스는) 태양마차의 고도를 위로 올린 사건입니다. 이것 역시 영웅으로써의 한 조건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다음의 영웅의 조건에 비추어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차이를 보자면 원작에서는 헤라클래스의 태생 때 버림을 받게 됩니다. 물론 제우스신의 뜻이 아닌 하데스의 유괴로 인한 것이었죠. 하지만 원작에서는 태생의 버림은 없습니다. 단지 헤라의 미움을 계속 받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우리나라 신화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고주몽은 부여 왕 태자들의 그를 죽이려는 계략에서 도망한 사건입니다. 다시 말해 보통 사람들은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으로 부터의 버림을 영웅은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애니메이션과 원작에서 나타난 조력자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자신이 알킬레우스를 훈련 시켰다고 소개하는 ‘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필’은 그리스 신화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필’이 아닌 켄타우로스 종족의 케이론입니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해 아스클레피오스,이아손,디오스쿠로이,아킬레스,악타이온 등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페가소스’라는 조력자가 하나 더 등장하지만 실재로 페가소스는 벨레로폰이 키마이라를 죽일 때 탔던 동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후반에 다다르면 헤라클레스에게 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데스의 음모와, 기간테스와의 싸움입니다. 하지만 원작에서 기간테스와의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찾을 수 없었으며 기간테스와의 전쟁을 준비하던 제우스가 전쟁의 목적으로 나은 아들이 헤라클레스로 알고 있습니다. 원전도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헤라클래스의 도움으로 기간테스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됩니다. 하지만 원전에서 말하는 헤라클래스의 시련은 아마도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만들어 아내 메가라와 아들들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과 더불어 신이 되기 위해 겪는 12가지 과업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이런 위기를 견디어내어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4. 내가 생각하는 영웅이란?

 

 지금까지 살펴본 영웅의 조건을 요약하자면 “1) 고귀한 혈통 2) 기이한 출생 3)비범한 재능 4) 버림을 받고 5) 조력자를 만나고 6)위기를 만나고 7)위기를 극복하고 승리를 이룬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 신화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신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더불어 오늘날 어느 한 신화적 존재로 부각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신화와는 똑 같지는 않더라고 몇 가지 요소를 유사하게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혹은 그것을 이용해서 과거를 조작하는 경우도 가끔씩 보여 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왜 이런 식의 것들이 과거와, 오늘날 ‘영웅’의 조건으로 말하여지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적합성과 정당성으로 얘기되어 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떤 결과가 나오면 그것에 걸 맞는 얘기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화란 영웅 탄생 후, 그의 정당성과 적합성에 걸맞게 그의 과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것이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영웅이 탄생하게 되면 후 조건으로 신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이듭니다. 즉, 수 천명, 혹은 수 만명 중 한명이 영웅으로 선발되어지고 그 영웅은 단지 미리 준비되어 있던 각본에 맞혀 그의 과거가 조작되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걸 맞는 과거를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영웅이란 단지 시대 흐름에서, 더 붙이자면 시대의 필요에 의해서 탄생된다고 생각합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얘기가 있듯이 어떠한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영웅의 자질은 어느 시대에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그 재능이 어느 시대를 만났느냐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5. 나오는 말

 

 지금까지 헤라클레스에 대한 원전-원전이라고 말하기 힘든-과 애니메이션을 비교하여 영웅에 대한 개념과 특성에 접근하려 노력하였습니다. 물론 영웅의 조건은 현재 많이 얘기되어지고 있는 것을 중심으로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 영웅 만들기 틀 짓기는 아마도 많은 신화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얘기 했듯이 현대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군중-현재는 대중-에게 영웅의 합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신화를 읽으면서 이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식의 신화적 영웅 만들기가 군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 듭니다. 즉 영웅의 조건을 말하기 보다는 영웅이 만들어지는 조건을 말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드리면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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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사정 볼것 없다 - 한국 영상미학의 시작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3.22 14:21
감독 : 이명세
주연 : 안성기, 박중훈, 장동건
장르 : 코미디,드라마,스릴러,액션
상영정보 : 1999년 7월 3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 어두운 분위기에 눈에 띄는 노란 색체의 유아적 캐릭터, 그리고 비에 젖어 툭툭 떨어지는 노란색 단풍들... 그 위에 흐르는 매우 서정적인 분위기의 노래...애틋한 사랑 얘기에서나 볼 수 있는 영상 미에서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범죄와 폭력, 그것들은 이 영화 속에서 한편의 순정 만화와 같은 장난기로 옅 보여 진다.

- 영화사에서 007 시리즈와 같은 말도 안돼는 영웅에 대해 대중들의 반감이 슈퍼맨과 같은 무적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대중들도 슈퍼맨이 총알을 피하면 007이 총알을 피하는 것에 대해 느끼는 반감대신 슈퍼맨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영화에서는 비현실적인 영화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대중들과 영웅 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리고 매우 일상적이지 못한 삶을 그리기 위한 방법의 타협점으로 과장된 만화 적 묘사를 선택한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99년도에 대중성이나 작품성이나 모든 면에서 극찬을 받았던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이다.

-이 영화는 우리의 삶에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는 범죄자와 그들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범죄자란 매우 과격하고 또한 잔인하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형사란 범죄자를 잡는 매우 정의로운 존재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닌 전혀 다른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선 40계단 살인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범죄자를 보자. 강승민, 그는 매우 순정적 캐릭터이다. 물론 대사 없는 연기로 카리스마를 연출하기는 했지만 그의 이미지는 생긴 것부터가 매우 선하게 생겼으며, 또한 여자에게 잘해주고 또 부모님의 죽음에 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된 상가 집에 오는, 매우 순정적하고 자상한 이미지이다. 그리고 극중 이름은 모르지만 박상면의 이미지는 처음에는 매우 거칠게 등장하지만 그 후에는 매우 코믹하게 나온다. 그리고 안재모 역시 머리가 단발에다가 여자처럼 생긴 것이 어딜 보아도 깡패와는 거리가 먼 캐릭터이다. -그런데 어떻게 경찰에 잡혔는지?^^-이렇듯 이 영화 속 범죄자의 캐릭터는 다른 동네 깡패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이다. 그리고 형사들의 이미지 역시 너무나도 과격하게 그렸지만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매우 코믹하기에 미워할 수 없으며 또한 범죄자들을 잡으려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그들의 삶의 애환을 옅 보면은 그들에게 측은함까지 느낀다. 그리 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범죄자와 형사들의 이미지에서 탈피한 것이다. 이것은 범죄자나 그리고 형사나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전에 극장에서 개봉된 「투캅스」란 영화 대한 답신의 영화처럼 보인다. -그들의 부조리를 욕하지만 만약 우리가 형사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그들도 성인 군자가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 영화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순히 형사와 경찰의 모습이다. 하지만 영화는 항상 대유적 이면서도 상징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 영화 역시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특별하게 생각되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원하거나 아니면 그들을 너무나도 비하시킨다. 이제는 그런 편견에서 탈피해야 겠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의 초반부의 살인 장면이 이 영화를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어두운 거리의 밝은 이미지의 아이..그리고 단풍잎 그것은 우리들의 이분법적인 편견에 대한 비판적 영상이다. 검정과 노랑은 생각하기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 둘을 같이 배열하면 매우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장면에서는 이 영화를 색체 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영화는 보여주는 영상매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매체에서도 모두 차용하고 있는 스토리로 영화를 지탱한다면 "TV는 바보상자이다."라는 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영상 매체는 가장 큰 장점인 이미지의 전달을 부각시켜야 된다. 그러한 면에서 이 영화는 당시 한국 영화의 약진에 대표할 만한 영화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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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 관계망상과 초능력의 사이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3.22 14:00

 고등학교 시절 창문 밖을 바라보며 보통 그 시절 다 한번씩 생각하듯 나도 내 자아?대해 생각 했었고, 나란 존재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끊임 없이 내 자신에게 질문을 하곤 했다. 그때 한 친구가 "어느 곳에서의 나비의 날개짓이 한 달 뒤 다른 곳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라는 카오스 이론으로 작은 존재의 의미를 내게 일깨워주곤 하였다. 카오스 이론 중에 이런 말도 나온다.

A time traveller accidentally steps on a butterfly in the distant past, causing broad changes in the present

  시간 여행자가 아주 오래된 과거에서 우연히 밟은 나비로 인해 현실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이 말은 하나의 작은 사건이 후에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수있다는 내용이다. 이영화는 같은 맥락을 이야기하고 있다. 에반의 아버지의 말대로 에반은 신의 장난을 이 영화에서 한다. 지워진 기억을 자신이 새로 구성하며 그에 대한 새로운 기억은 머리 속에서 다시 재 구성되어진다. 한 인간의 기억으로 인해 모든 세상이 바뀐다. 그것이 에반의 기억 변이 일수도 있고 실제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일수도 있다. 그것은 영화에서 이야기하지 않고 관객의 몫으로 남기고 있다. 그러므로 난 이 두 관점으로 나누어 이야기 하겠다.


  한 정신병자의 관계망상적 착란 현상


  장정일의 독서일기 중에 이런 말이 있다.「내가 읽지 않은 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즉 내가 보고 듣고 느끼지 않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단적 개인 중심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이 영화를 이런식으로 접근한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 에

반은 자신의 뇌 안에서 계속 끊임 없는 명확한 답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캘리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한 과거 되돌리기.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에 대한 부정으로 인한 새로운 이야기의 재구성을 엮어간다. 누구나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으며 누구나 그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한다. 이렇게 되돌리고 싶은 과거를 에반은 자신이 겪은 기억 상실증을 이용하여 없어진 부분을 자기 스스로 만들려한다. 다시 말해 그 기억의 공백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심리적 탈출구(무의식적 방위기제)로 이용한 것이며, 결국 그 답 없이 반복되는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헤매게된다.

  즉 혼자 세계에 빠진 소위 말하는 미친 놈(관계망상-주위 사람들의 동작이나 태도가 자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같이 느껴지는 것)인 셈이다. 자신이 세상을 변화 시킬수있다는 착각에서 연유하여 자신은 끊임 없이 기억을 재생산하며 타인의 행복을 위해, 혹은 자신이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기억의 공백에서 몸부림을 치게된다. 이것이 관객이 생각하게되는 첫번째 에반의 상태이다.

 

 시공간의 자유로운 이동    

                  

  저 옛날 키아누리브스가 아직 어렸을 때 찍었던 액설런트 어드벤쳐(옆 포스터)를 기억하는 사람 혹 있는지? 그 영화가 이 영화

를 잘 설명할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타임머신을 이용하여 과거로의 여행을 한다. 과거로 여행하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은 후에 실제로 과거 여행을 하지 않고 '난 어느 시간으로 가서 어떻게 할거야'라고 마음만 먹으면 그로 인해 현재의 모습이 바뀌는 것이다. 즉 생각으로만 현재를 바꿀 수 있는 능력까지 갖게 된다. 다시말해 주인공에게 있어 타임머신은 머리 속에 기재된 하나의 도구일뿐 과거로의 여행은 개인 스스로가 할 수있는 능력으로 자리 잡게 된것이다.                      

  이 영화의 에반 역시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나온다. 그의 타임 머신은 지워진 기억과 그 주변 기억을 불어 일으킬수 있는 일기장이다. 지워진 기억을 불러 일으키어 그곳으로 돌아가 그 지워진 기억을 재구성하고 다시 현재-과거의 재구성으로 인한 전과 다른 현재로 돌아온다. 이것을 좀더 깊게 생각해본다면 그 끓어진 기억은 선택의 갈림길이며 그 갈림길로 인해 파생되어진 시간은 지금의 현재 옆에 같이 공존한다는 얘기까지 할 수있다. 즉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은 같지만 여기와는 다른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이야기 해준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 세계가 3차원이기에 4차원을 설명하기는 힘들고 만약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A라는 2차원적 공간이라 가정하고, 이 2차원의 세계에서 다른 것은 다 같지만, 예를 들어 a,b는 같지만 z는 같지 않은 B,C라는 차원이 존재한다. 이것을 확장하여 3차원 세계를 상상한다면-상상하는 것 조차 힘들다.-지금의 3차원 세계와는 다른 3차원 세계가 4차원안에 같이 공존한다는 가설을 세울 수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에반은 그 4차원에서의 3차원의 분기점을 접근 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온다고 말 할수있다.-또다시 3차원을 인용하여 쉽게 설명 하자면 공간에서 한 꼭지점으로 부터는 a라는 면에서 b,c라는 면으로 이동 할수 있다. 즉 다른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관계망상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인간이 아니라 그런 초인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런 저주로 인해 세상을 짊어 졌음에 의한 갈등 구조를 그린 영화이다. 즉 자신만이 이 누군가의 불행을 해결 할수 있는 구원자라고 생각하며 결국 자신을 희생하려는 생각까지 미치게된다. 이것이 관객이 생각하게되는 두번째 에반의 상태이다.


 행복과 불행


  지금까지는 관객이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에 대해 이야기 보았다. 이제 좀더 에반, 캘리, 토미, 레니 4명의 인물들에게 다가가보자.에반이 기억을 되돌리기 전의 삶은 모두가 불행안에서 허덕인다. 레니는 과거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자폐적인 인간이 되었으며 캘리는 에반말과 자신의 과거로 인해 자살을 하게된다. 그리고 토미는 그로 인해 에반을 증오가 증폭되며-그 증오는 어려서부터 였다, 에반은 자책감에 빠진다. 이런 계기로 에반은 과거를 되돌린다.-그것이 정신질환의 시초인지 실재적 능력인지는 떠나서-하지만 어디에도 모두가 행복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유일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불행해지는 것을 보는 것뿐이다」라는 쇼펜 하우어의 말처럼 모두가 행복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 하나가 불행의 짊을 지고 가야 나머지가 행복에 머무를 수있다는 이야기를 표면적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구성 사이에 잠시 끼워진 관념과 같이 존재하고 있다. 마치 예수가 인류의 모든 죄(불행)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같이 에반 역시 자신이 모든 불행을 안고 모태안에서 자살을 선택한다. 그렇게 하여 나머지 세명은 모두 행복 위에 살게된다. 불행만이 행복을 존재하게한다.


 영화 속에 그려진 종교적 코드


  나의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실재로 이 영화의 에반은 마치 예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후에 손바닥에 못박힌 자국까지 생

기는 장면까지 나온다. 이것은 내가 예측하기에 감독의 의도가 아닐지? 자신의 희생으로 인한 인류의 구원,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던 예수의 갈등, 그것을 에반이란 인물로 재 창출했다고 생각하게한다. 결국 자신의 어깨위에 있는 책임감- 모두를 행복하게 할수있다는 책임감으로 부터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게된다. 이것은 결국 예수의 인류구원과 같은 맥락을 이끌고 있다. 착각일 수있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이런 종교적 코드를 강하게 읽을 수있었다.  

 

 이야기를  마치며


  과거로의 여행이라는 주제로 다른 관점에서, 다른 영화적 장르로서 다가 갔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으며 새로웠다. 데스티네이션 2(옆 포스터)-실재로 보진 못했다-의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운명이 아닌 새로 변화 될수 있는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이렇게 손쉽게 뒤집기란 어려운데 그 둘은 데스티네이션2와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천역던 스럽게이야기하는 것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데스티네이션 2의 각본을 써서인지, 공포 영화의 관습적 장치 없이 영화를 치밀한 구성을 이용하여 공포적 분위기로 몰고가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또한 시간 이동시 일기장의 철자들의 움직이라든지 주변 방의 흔들림은 꽤 괜찮은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점이 있다면 나비효과라는 타이틀 처럼. 한 개인의 운명 장난으로 인해 바뀌어지는 세상을 그렸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마치 「빽투더 퓨쳐」와 같이 과거의 작은 행동으로 인해 현재로 돌아 왔을 때 세상 전체가 바뀌었다라는 이야기가 좀더 끌리지 않았을까? 몇번의 시간의 번복이 있어지만 결국 변한건 그 무리만이다. 과연 그것이 맞는 이야기인지도 의문이다. 고작 그 주변만이 변한다는 것 말이 될런지? 이 영화는 너무 작은 스캐일의 변화를 가지고 나비효과라는 타이틀을 거창하게 걸고 있다는 것이 약간 마음에 걸린다. 너무 좁은 시각으로 감독은 세상을 바라본 것이 아닌가하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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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카트슨 사람들 (Delicatessen)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3.22 00:24

감독
  장 삐에르 주네
주연  도미니크 피뇽, 마리 로르 두냐, 장 끌로드 드레이퓨
장르  로맨스,판타지,SF,블랙코미디
상영정보  18세 이상 관람가

 어두운 거리에 노란 황사로 시작되는 한 배경.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모든 것들이 망가진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는다. 그것을 시행하기 위해 그 집단만의 규율마저 정해져버린.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 곳에 머물렀던 자들은 모두 그들의 배부름을 위해 식탁 위에 올려져야만 했다. 이제 한 예술가가 그 곳에 머물기 시작했고, 이제 영화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 전체적 분위기를 네오 누와르적인, 헐리우드 B급 영화 풍으로 흘러간다. 황색의 음산한 황사가 마을을 뒤 덥고 시종일관 온통 어둡고 칙칙함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누벨이마주의 마지막 대를 잇는다는 장삐에르주네의 처녀작은 이렇게 황폐한 스크린이었다. 또한 괴기스러운 이미지가 영화 내내 넘쳐 났으며, 중간 중간의 위트는 잊지 않고 영화를 톡톡 튕겨주었다. 마치 이 영화는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픽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잔혹하며 어둡고 유치하면서 웃기게, 그리고 퇴폐적으로. 물론 이 영화가 어둠의 뒷골목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내 머리 속에서 '이 영화는 느와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영화의 상징적 장면 및 장치>

1)배수구

 영화에서 눈에 띄는 장면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면 아마 클라베와 풀르스의 정사 장면일 것이다. 두 사람의 격정적 정사에 흔들리는 침대 그리고 그 침대 삐끄덕 대는 소리에 리듬을 맞추는 사람들. 친구의 교수는 이 장면을 보고 이 공간에서 정해진 규율이 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른 견해이다. 물론 교수의 말도 일리는 있다. 영화 아밀리에를 본 사람이라면 이와 비슷한 장면이 그 영화에서도 연출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틀리지만 그 장면들이 이야기하는 맥락은 같다고 생각되어진다. 바로 생각의 '전이'라는 것이다. 우선 한 예로 이 건물 사람들은 인육을 먹는 것에 전혀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장면을 보자! 뤼종이 줄리에게 말하는 것을 클라베가 배수구를 통해 듣는다.

'경우에 따라 틀리지만 원래 악한 사람은 없어요. 환경 때문에 변해서 그렇지'

이 말을 들은 클라베는 후에 풀르스에게 똑 같은 이야기를 한다. 즉 클라베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지만 환경이, 집단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즉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많은 것을 상징하고 있다. 우선 권력의 중심자인 클라베가 모든 이를 감시하는 통로라는 것을 암시하며 동시에 클라베의 말대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미디어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가지 더! 오로르는 배수구를 타고 들어오는 말에 최면에 빠지고 자살을 계속 시도한다. 즉 건물의 배수구는 생각을 조정하는 문명의 매스 미디어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교수의 말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규율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것보다 조금 더 확장된 의미가 아닐까?

2)물

 이 영화에서는 물이 꽤 비중 있는 위치에서 표현되어지고 있다. 물의 이미지는 중 이 영화에서 표현된 것은 청결과 생명의 근원이다. 이 두 개의 이미지를 이 영화는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구원'으로 이 두 개의 이미지를 묶고 있다. 우선 지하에 홀로 살고 있는 노인은 지하의 고인 물로 달팽이와 개구리를 사육하며 그것들을 인육 대신 먹는다. 즉 그 노인은 죄를 범하지 않는 구원(중립)의 위에 있는 것이다. 또한 창녀 풀르스 역시 자신의 몸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 물을 이용하며 자살하려는 오로르는 항상 물을 이용해 자살하지만 물 때문에 죽음에서 구원받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뤼종과 줄리가 밀폐된 화장실에서 물로써 그들을 막고 있던 사람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장면은 내 생각에 확증을 안겨다 주었다. 이런 식의 구원은 바로 관객들의 심리적 탈출구로 이어지게 하거나 도덕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역할이다.

3)곡물

 현대 문명 사회는 산업과 정보 산업에 치중하다 보니 농축업이 비교적 괄시받는 업이 되어 버렸다. 솔직히 외국 사회는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나라 현실을 비추어 봤을 때 돈을 벌기 위해 농업은 뒤로 밀려난 상태이다. 즉 본말이 전도 된 상태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가다간 영화처럼 돈은 휴지쪼가리에 불과하고 곡물이 귀한 사회가 도래 할지 모른다는 경고일 수도..

<인물>

1) 클라베

최고 권력자. 한 건물 안의 모든 것을 통제하며 부를 축적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식량이 바닥나 버린 상황에서 치안(칼)과 생계(고기)를 양손에 들고 있는 그는 모든 이 위에서 굴림하고 통제하게 된다. 더 크게 부풀려 이야기하자면 도덕적 관념을 깨고 이렇게 살면 모두가 죽는다라는 생각으로 일어난 좌익 세력(이 영화에서는 자본 주의를 뜻함)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다. 인육을 먹는다는 것은 매우 급진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도덕이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이 클라베의 생각의 동의하고 보수적 세력인 지하인간들은 지상 세계에서 밀려 난 것이다. 즉 이데올로기의 변화, 시대의 변화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2)뤼종
도미니크 피뇽이 이 역할을 맡고 있다. 아밀리에도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도 그는 출연한다. 즉 장피에르 주네가 연출한 작품 중 에일리언 4를 빼고 전부 출연한 배우이다. 어떤 한 배우를 자신의 영화에 자주 출연시키는 감독들이 가끔 씩 존재한다. 즉 감독, 자신의 스타일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배우를 한 명 정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뤼종 역의 도미니크가 장피에르 주네 스타일을 제일 잘 나타내는 캐릭터가 아닐지? 어떻게 보면 괴상하고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이미지... 감독이 나타내려는 스타일과 일치하는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우선 뤼종은 한참 부려 먹고 쓸모 없을 때쯤 잡아 먹혀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제일 하층 노동자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그는 이 영화에서 광대의 역할을 맡고 있다. 광대란 사람들에게 웃을 주는 사회적 위치에 있다. 식량 부족의 이유로 척박하고 메말라버린 곳에서 happy virus를 퍼트리는 인물이다. 즉 영화 아밀리에서 아밀리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뤼종을 그 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줄리, 그리고 풀르스에게 웃음과 미소를 전이해준다. 그럼으로써 조금씩 그 건물 안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줄리가 있다.

3)줄리
급진세력은 정리되지 않은 규율과 규범 체계로 인해 항상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급진 세력 중 과거의 사상에 빠져있는 인물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영화에서 그런 존재는 언젠가는 들고 일어서게 마련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처럼 딸이라는 가부장적 가족관계에서의 위치는 항상 억눌린 존재로서 이야기되어지고 한 발단(뤼종)으로 인해 사회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즉 줄리는 이 영화의 가장 절정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의 발단을 제공하는 인물이다.

4)풀르스
이 여자는 자신의 몸을 팔아서 생을 이어나가는, 즉 부와 권력에 기생해 가는 존재이다. 영화는 그녀를 좋게도 나쁘게도 그리지 않고 단순히 '이렇다'라고만 이야기하고 있다. 즉 영화는 창녀를 평가해야할 존재가 아닌 어쩔 수 없이 사회에 파생되어지는 존재라는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장정일의 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내 몸을 지키는 것으로 내 밥 그릇이 떨어지는데? 많이 배우거나 많이 가진자들의 입에서 공원이나 빈민들의 난잡한 성생활이나 비도덕성이 지적되곤하는데 그것은 웃기는 수작이지요. 그들의 부패한 자본이 난잡한 성생활과 비도덕을 양산해내는 장본인인 줄도 모르고 말예 요.-NO.275

즉 매춘이란 권력과 자본이 발생하는 곳에는 항상 파생되어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5)건물내 사회
가진자가 못가진자를 잡아 먹는 혼합 경제 체제 이전의 자본주의의 초기 모습을 비유하는 듯 보인다. 우익 세력을 보수적 세력으로 보통 밝은 빛을 보고 좌익은 급진적 집단으로 게릴라적인 성격을 뛰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급진적 세력의 자본주의가 바로 사회를 장악하는 현상이 보여진다. 즉 배고픔, 욕망이라는 것이 그 동안 인간안에 어떤 사회 규범의 틀인 벽을 부수고 바로 윗자리를 차지한다는 얘기인 듯 보인다.

6)지하인간들
먹고살기 힘들어도 도덕성을 내세우는 보수적 세력이며 곡물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보아 공산적 사회집단으로 생각 되어진다. 결국 급진적 세력에게 무력에 의해 몰려 지하에서 생활하며 후에 줄리와 최하의 노동자인 뤼종에게 사상과 체제의 이동을 돕는 게릴라 무리이다.

7)지하실 할아버지
냉전 체제에서 프랑스의 위상이 어떠했는 전혀 알지 못하는 관계로 뭐라 떠들어데기 뭐하지만 두 양극 체제에서의 중립적인 모양을 취한 프랑스의 비유적 표현으로 생각되어진다. 달팽이나 먹고 Planquette이 작곡한 Sambre et Meuse라는 상브르-뮈즈 연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는 프랑스의 유명한 행진곡이 나온다는 점으로 본다면 감독은 프랑스가 냉전 체제에서의 중립적 자세를 보인 것에 대해 비판을 한것으로 보인다.

<음악과 음향>

-대분이 왈츠와 쿨 째즈 이전의 핫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점으로 봤을 때 난 이영화가 미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화 평을 보면 어느 미래라 하지만 전혀 미래라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문명이 퇴보된다하더라도 왈츠와 오 육십 년 전의 핫사운드를 즐겨 듣는다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난 이 시간적 배경은 그저 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머리 속에 있는 공간. 즉 판타지적인 다른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이 영화의 주된 테마 곡이라면 바로 뤼종과 줄리의 첼로 톱 연주다. 첼로의 부드럽게 감는 소리와 톱의 톤이 높으면서 날카롭고 서스테인이 긴 음들이 살살 떨리면서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 발란스를 맞혔다. 좀더 괴기한 치장을 하기에 충분한 협주곡이었다.

<감독은 도대체 뭘??>

감독은 이 영화에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 그리고 중립적인 프랑스에 대해 그리고 있다. 다분이 어떤 체제가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세개의 체제 모두 우습게 그려 놓아서 어떤 점이 좋다라고 말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건물안 인간들로 잔악하고 강한자가 약한자를 잡아먹는 포악한 세계로, 지하 인간단체는 배고프지만 어쩔수 없다는 방관적 자세로 일관하고, 지하실의 할아버지는 달팽이나 먹고 개구리 하나 잡아먹겠다는 아이들을 겁이나 줘 달아나게하는 힘 없고 인정 없는 노인으로 그렸으니 조국에 대한 예찬도 없다. 물론 영화 끝 부분에 뤼종과 줄리의 체제 이동후 평화로운 엔딩을 잡아 마르크스 레닌 주의의 유물론적 역사관에 따른 자본 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변화를 얘기하는 듯하여 공산체제를 옹호하는 것 같지만 감독은 영화에서 멀찍이 떨어져 세개의 체제를 기괴한 동화 분위기로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있다.

-Delicatessen을 보고 나름대로의 짧은 생각들 몇 자 줄줄이 적어 놓고 보니 상당히 많은 얘기가 되어 버렸다. 비록 워낙 아는 것이 없는 놈이 쓴 것이라 읽어도 영화 보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읽어준 것에 상당히 감사하며 오랜만에 이런 작문의 글을 쓰니 내 사고의 확장에 도움을 준 듯도 하여 기분이 좋다. 다른 영화와 비교도 하면서 좀더 이야기 할까도 생각했지만 읽을 사람도 없고 나도 더 이상 허기저서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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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 Red Line - 진정한 공포, 전쟁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3.21 14:47
감독  테렌스맬릭
출연  숀펜, 닉놀테, 조지클루니, 존쿠삭, 벤채플린, 애드리안브로디, 엘리어스코티아스, 우디해럴슨, 자레드레토, 존C.라일리, 존새비지, 존트라볼타, 미츠이시켄, 제임스카비젤
장르  전쟁
시간  170 분
등급  15세 이상 제작 : 1998 년

전쟁 영화만한 공포 영화가 없다. 군에 갔다 와서 인지 몰라도 전쟁의 공포가 피부에 와 닿는다.

 역시 전쟁은 가장 효과적인, 사실적인 공포 영화의 소재다.전쟁 영화 중 가장 격렬한 것은 기관총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상륙 작전에서 그 참혹함을 볼 수있었다. 해변에 내리자마자 쏟아지는 총알들이 돌진하는 군들에게 꽂히는 총알은 엄청난 수 였으며 냉혹한 죽음이었으며 또한 의미 없고 허무함이 같이 공존했다. 이 영화도 그러했다.군의 전진에 있어 기관총의 무자비함은 인간삶의 무의미한과 허무를 계속해서 클로즈업 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총알에 그냥 픽픽 쓰러지는 군인들. 무의미하게 쓰러져가는 모습이 참담하고 그것을 보는 나는 공포를 느꼈다. 죽음 앞에서 커져가는 동공과 흘리는 식은땀.쓰려져 있는 시체는 고기일뿐이고 지나간 전쟁의 기억은 휴식의 가십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과거의 공포와 현재의 허무...그것이 전쟁이며 인간 삶의 연속이다.

 내가 많은 전쟁 영화를 접하지 않아 모르지만 이 영화는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 영화로 보여진다. 영화 시작 부터 계속나오는 수많은 삶에 대한 질문들...전쟁과 파괴, 삶 그리고 평화 등등...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였다.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빗겨서 같은 공간 안의 원주민의 삶이나 평화 스러운 자연을 보여줌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극대화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 전쟁은 자연의 이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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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Monster - 만두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3.21 14:42
국가 홍콩
감독 프루트 챈
출연 베일 링, 양가휘, 임설, 종진도

 쓰리 몬스터의 세번째 이야기인 만두의 다른 편집본이다. 그 영화에서의 만두의 런링타임은 37분 이다. 내가 본영화는 91분짜리. 상업적 울궈먹기는 잘 모르겠고-우리나라에선 개봉 안했으니... 어쨋든 쓰리 몬스터를 못본관계로 그런 얘기는 집어치우고 영화 얘기를

 내가 알기로는 쓰리 몬스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괴물이라 알고 있다. 시기 증오 탐욕 등등...다른 영화는 잘 모르겠고 이 영화 만두는 탐욕을 그린 영화다. 그 중 젊어지려는 욕심. 그 욕심이란 많은 것을 내포하다. 정욕과 시기를 동반하며 영생이라는 욕망을 끝으로 보고 있다. 왜 그렇게 젊어지려드는 것일까?

 회춘

여성은 남성에게 남성은 여성에게 구애를하려는 일련의 행동들은 당연한 자연적 이치다. 이성이 원하는 것들이 나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중하나가 여성들의 이뻐지려는 심리이다. 물론 어떤 여자들은 그런게 아니라 단지 자신의 만족이라 이야기하겠지만 어디 까지나 그것은 합리화일뿐 무의식적으로 남성들이 원하기에 이뻐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성은 시각으로 받아들이는것에 민감하기때문이다.-내가 심리학에 문외하지만 이것은 심리학의 이해때 교수가 이야기해준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남성의 회춘은 무엇인가? 힘(力)이다. 정욕의 상징이며 더욱 많은 여성을 소유하려는 탐욕이며 영생을 으로 가는 길이다.결국 그렇다면 이뻐지려는, 젊어지려는 욕망의 이야기는 성욕으로 이어지고 성욕은 개체 번식의 수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젊어지기 위해 번식의 결과물을 먹고 있지 않은가? 인간들이란 한심한 존재들이다. 번식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버리는 개체는 있어도 개인을 위해 개체 번식을 포기하는 것들은 인간 밖에 없을것이다. 인간 만큼이나 아둔한 존재가 세상에 존재할런지. 인간들은 꼭 자신들이 신인냥 교만을 떨면서 자연의 이치를 빗겨나가는 것을 밥먹듯이하고있다. 인간들이 만든 국가의 인간들이 만든 정책, 인간들이 만든 사상들이 이런 멍청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만한 공포가 더 있으랴? 바로 나 자신이 공포다. 인간 자체가 공포라는 것이다.

인육과 음식

인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보통 두가지를 끌고 나온다. 탐식(301 302,양들의 침묵) 혹은 굶주림(얼라이브, 델리카트슨)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둘 다 아니다. 시기와 정욕에서 온다. 하지만 영화는 탐식을 끌고 가고 있다. 영화 전반을 걸쳐 요리를 전면을 걸고 이끌어나가고 있다. 탐식을 다루는(인육이 아닌)영화라면 음식을 씹는 음향을 듣고 침을 삼켰겠지만 이 영화는 반대로 구토감이 올라왔을 것이다.중국 음식이 가지는 색의 다채로움과 보여주는 맛을 영상에 채우고 있지만 관객은 보고 구토를 느낀다. 이런 아이러니함을 기반으로 영화를 내세운다는 점이 색달랐다.

낙태

이 영화에서는 낙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아들을 가진 소녀. 그 소녀 배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들인지 손주인지를 모르는 어머니. 그런 수치스러움, 아이를 기를 수없는 사회가 만들어 낸 나이, 그것들이 소녀에게 낙태를 하게한다.사회가 만들어낸, 아니 인간이 만들어 낸 도덕을 위해 낙태를 한다는 것. 도덕이란 신성한 것이고 지킴의 부자유가 있지만 모든이에게 이로움을 주는 장치 아닌가? 그런데 낙태를 만들고 소녀의 죽음으로 몰고간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신성한 도덕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추악한 짓을 조정한 것이다. 이것 또한 아이러니하다.

모든 영장물 위에 굴림한 다는 것이 가지는 저주인가? 그 교만함이 자멸로 이끄는 것인가? 자연에게 바이러스 같던 인간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백신에 의해 자멸해가고 있다.겉으로는 더욱 번지르하게 발전하지만 속으로는 더욱 곪아가고 썩어가고 있다.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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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3.21 14:14
감독  김기덕
주연  곽지민, 한여름, 이얼
장르  드라마
상영정보  2004년 3월 5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성경을 본 사람이란면 사마리아란 무엇인지 알 것이다. 사마리아란 하느님에게 선택 받은 유대인을 포기하고 이방인과 결혼한, 그리고 그의 자식들인 혼혈아인 사마리아인들이 사는 팔레스타인 중앙부에 있는 고대 도시의 이름이다. 

 즉 버림 받은 자들의 도시. 멸시 속에서 살아야만하는 사람들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버려진 인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소녀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조 교제를 하여 유럽 여행을 가려는 재영은 돈이나 사람들을 만나는데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여진에게 의지한다.그녀는 그 /만남/이라는 것이 /잠시 함께 사는 것/이라 한다. 나중에 여진의 아버지가 말한 테레사 수녀가 안수기도를 하는 것 처럼 재영이 말한 바수밀다 처럼 그녀는 그런 /만남/들을 갖는다.

 원조 교제를 하나의 만남이라 생각 했던 재영의 빚을 갚아가는 여진은 그로 인해 상처 받는 아버지사이에서 갈등을 빚는다. 마지막 여행아버지는 딸에게 살아가야 할 주어진 사회에서 올바로 가야할 노란선을 알려주고 자신의 죄를 받으려고 딸의 곁을 떠난다. 하지만 그 뒤를 따라오는 여진의 모습은 아직 미숙하고 힘들다. 아직 사회를 모르는 연약한 인간들에게 구원을 해주었던 그녀는 정해진 삶 위에서 덜거덕 거린다. 결국은 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를 보고 생각 했다. 구원은 그들의 세상 사마리아에서 가능한 것이고 이곳. 그 넘어의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는 모든 사실이 까발려진 가장이 투신 자살을 해야하는 이 세상에서는 단순히 절름발이의 장애, 혹은 숨겨야 할 무엇이라는 것이다.

 버려진 것들은 버려진 곳에서 구원을 받는다.
이 곳으로 넘어오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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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 라이크 베컴 (Bend it like Beckham)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03.21 14:09
감독  거린더 차다
주연  파민더 나그라, 키이라 나이틀리,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
장르  스포츠,코미디,드라마
상영정보  2002년 8월 3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누구나 편견은 가지고 있다. 누구나 뛰어 넘어야 할 세상 안에 있다. 제스가 결승전 마지막 프리킥을 찰 때 쌓여있던 벽 처럼 넘어야 할,  누구나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기성 세대는 언제나 안주와 안전빵을 원한다.옆집의 어느 딸래미 아들래미 처럼 안전하게 세상을 살아 나가길 바라는 것이 우리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다. 하지만 누구나 똑 같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처럼 살아 갈수는 없다. 세상이 바뀌고 통념도 바뀐다. 우리는 언제나 편견을 부수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싫음 주저 앉으면 그만이다. 그냥 옆에 있는 인간과 똑같이 성장하며 똑같이 살아가면 행복하다는 착각으로 살아가면,주저 앉으면 그만인 것이다.물론 후회라는 비싼 값을 치뤄야 하지만 그 삶도 나쁘진 않다.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 영국남자와 사귀는 여자. 그것이 영국에 사는 인도인들에게 용서 받을 수 없는 벽이다. 하지만 그걸 넘고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에 우리는 대리만족을 느낀다. 왜? 그걸 보고 있는 난 그렇게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까지 살아 온 일생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또 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겁쟁이어서뒤로 숨었기 때문에.
 
 우리는 일생을 세상의 통념과 편견과 싸워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과 정면으로 붙든지 아님 도망가든지 그건 자신이 결정 할
것이다. 어디든 좋다. 제스의 아버지가 제스를 미국으로 보내기로 하면 서 한 말이 떠오른다.

"모두가 신의 뜻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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