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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묻혀져간 '사라진 원고'...

개인서랍/책감상 2009.07.19 22:51
한 사람이 추억할수 없는 과거와 행복하지 않은 현재, 기대없는 미래가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그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생각할수 있다. 여기 바로 그런이가 있다. 바로 '바벨'. 그는 자신의 기록을 부정받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에서 더 이상의 희망없이 살아간다. 스탈린 독재하에 그의 삶은 바로 죽은 것과 별반 다를게 없다. 
 총살 그건 그저 물리적 이동일뿐 이미 그는 처음 부터 죽어있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다른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중국 진나라 때의 분서갱유이다.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진나라 시황제가 사상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농서 등을 제외한 각종 서적들을 불태우고 수백명의 유생을 생매장한 사건이다.

그리고 유대인을 증오한 나치가 책을 불태우기도 했다.

위의 역사적 사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한사람의 생각을 모두에게 강요하는 시대에 글이란 그들의 지배사상에 폐가 되는 것이다. 피지배인들에게 생각의 자유를 줄수 있는 그런류의 것들은 모두 소각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생각에 동조하지 않더하더라도 살기 위해 몸을 지극히 낮게 살아가는 이들이있다. 그런이들이 너무도 흔하다. 현재에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다. 그런 가운데 작은 움직임 하나 하나가 발견되며 그들이 모여 미래의 희망를 만들어 가는것이 아닐까? 그런 움직임을 보여준 이가 '파벨' 이다.

"제가 선생님의 작품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파벨이 말했다. “더 많이 빼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374쪽)

이런 삼각형을 그리는 갈등의 구조속에 이야기는 시대배경과 비슷하게 매우 암울하게 이어나간다.  회색톤의 느낌을 전해주고 있는 이책에서는 그 삼각형의 팽팽한 긴장을 보여주고 있으면 각각의 심리적 묘사를 절제와 이완을 통해 잘 전달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은 한 인간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고 희생이 절대적인것은 아니다. 이렇게 큰 희생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라는 괴물이 보여주는  그림들은 한참을 뒤에 이어가는 새로운 세대에게는 큰 충격을 안겨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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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위한 삶의 지침서"26살, 도전의 증거"

개인서랍/책감상 2009.05.27 17:10

 요즘 나를 흔드는 어디선가 흘려 들은 이야기

"20대에는 머리만 복잡하지 몸은 편하다"

그 말을 좀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게한 책이다.

 그녀는 정말 강하다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어려운 세계 경제난에 취업하기 바쁜 요즘. 자신만의 꿈을 위해, 아니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꿈도 함께 키우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녀는 복잡하게 생각만하다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무조건 부딪혀 보는 것이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그런 무모함 때문에 많은 실패의 경험도 했고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했다.
 하지만 그녀의 끈기와 고집이 성공에 이르게 했다. 뭐 아직 절대적 성공이라 이야기할순 없지만 앞으로 남은 더 많은 도전이 있기에 그녀는 더 행복할 것이다.

자신의 꿈이 있고 어떻게 해야 그 꿈을 이룰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한번 읽어 보길 권한다. 그녀의 무모한 도전이 당신에게 큰 용기를 줄것이다.

공감가는 부분 1

 이 책을 읽는 도중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계속된 사기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에게 미련을 벌이지 못할까하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 본문 중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배신하는 사람들도 누군가를 배신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배신이 필요한 사회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가난이 인간의 이성을 빼앗고, 가난이 인간에게 상처를 주는 커다란 무기가 되는 것이다"

그녀의 이런 폭넓게 세상을 껴안는 생각이 다시 그녀를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 말 자체가 진실인가. 아닌가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했고 그녀가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감가는 부분 2

"당신은 왜 그렇게 행복한 환경에 살고 있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나요?"

너무나도 공감이되는 말이다. 아무리 세계 경제난이라 하고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20대의 나이에 무엇을 하든 굶지 않는 환경에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이 무서워서 그러는지 다들 취업에 목을 메고 꿈을 저버린다. 본인 역시 취업하지 않고 꿈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나 역시 부모님에게 취업을 권유받는다. 하지만 늘상 난 이야기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삶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녀와 다른 점은 난 너무 생각이 많다는 점이다. 이 책을 계기로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해도, 내 생각과 다른 세상이라도 아직 흘릴 눈물이 많이 남아있고 다시 일어 날수 있는 힘 역시 충분히 있다는 것을 이책에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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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가 없는 레슬러 더스틴 카터![꿈꾸는 토르소맨]

개인서랍/책감상 2009.05.19 19:05
유투브에서 Dustin이라고 치면 더스틴 호프만을 제치고 Dustin Carter가 가장 위에 뜬다. 유투브에서는 이젠 엄연히 스타의 자리에 있는 청년이지만 난 더스틴 카터라는 이름을 이책을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수막구균혈증이라는 병을 앓고 어쩔수 없이 팔다리를 모두 잃어 버렸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어린 나이의 일이였다는 것이었으며 천성이 낙천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만의 생활 방식을 터득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밥먹는 법,이동하는 법, 면도하는 법, 그리고 레스링을 하는 법 역시 자신만의 방식대로 이루어 갔다.

그 누가 팔, 다리가 없는 사람이 레스링에 도전하는것을 상상이나 할 것인가? 하지만 그것이 그를 스타로 만들었다. 난 새옹지마와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한다. 지금의 불행이 밑바탕이 되어 좋은일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에 많은 공감을 하기때문이다. 그 역시 책 말미에 자신은 정상의 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얘기 한다. 아마 그가 그런 불구 몸이 되지 않았다면 현재의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컴플렉스가 있을 것이며 누구나 인생에 한번쯤은 힘든 상황이 들익닥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인생에 반영하고 같이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책표지 나와있는 "그 해답" 같은 것은 없어도 "위기가 기회"라는 아주 기본적인 말이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세상에 벌어지는 사건은 매우 담담하고 건조하다. 하지만 그것을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가치의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다."

자신이 냉혹한 현실과 맞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번 읽어 봐라. 그런 생각은 그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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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보세요. '빼앗긴 내일'을...

개인서랍/책감상 2009.05.06 15:56

상상해 보세요. 천국이 없다면?
상상해 보세요. 나라가 없다면?


지금 존레논의 Imagine을 듣고 있어요. 정치가들을 "아이들"이라고 표현한 엮은이의 어린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네요. 가끔은 정말이지 사람이란 커가면서 더욱 아둔해진다는 생각을 해요. 왜 작은 것을 얻기 위해 더 큰 희생을 치룰려고 할까요? 종교와 국가가 사람들의 생명보다 중요한것일까요? 저 역시 사람이지만 정말이지 사람이란 동물은 이해할수가 없어요. 이해할려고 하면 더욱 슬퍼질 뿐이죠.

전쟁 속에 있으면서도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하더군여. 그런 성장의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책안에서 만나게 되는 자국의 전쟁 승리 소식에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도 슬프게 다가오네요. 그렇게 자신의 삶에 불쑥 찾아온 미운 전쟁임에도 그 전쟁의 승리에 기뻐하는 모습이란..알수 없는 감정에 빠지게 만드네요. 그것이 진정으로 종전의 기대로 인한 기쁨인지 단순한 승리의 기쁨인지...왜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단순한것에 경쟁을하고 자존심을 세우며 작은 힘에 불구하더라도 그 힘을 남용하려 할까요?

그것이 정치인들에 한정된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꼭 그런것 같지도 않아. 더 한숨이 나오네요. 더욱이 정치적인 사람들이 정치를 하니 더 기대할것이 없는 것이죠.
 
많은 가치관의 대립이란 면에서 엮은이의 구성은 정말 칭찬해줄 수 밖에 없네요. 갑작스럽게 "당한" 전쟁과 군인 입장에서 "유린"할수 밖에 없는 전쟁의 모습, 그리고 "당하는" 자국의 모습과 그 당하던 나라가 다른 나라를 반대로 "짓밟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세상에는 옳은 가치관이란 없다는 생각이 다시한번 들어요. 그리고 말도 안되게 만들어 놓은 가치관에 길들여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꾸며 놓아서 힘없고 착한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움직이는 모습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아무것도 얻는 것 없는 전쟁.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전쟁을 일으킨 그 몇몇의 어른들도 뭔가 얻긴 얻었는지 궁금하네요.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지. 수만명의 목숨 대신에 무엇을 얻었는지 궁금하네요. 자유를? 평화를? 평등을? 인권을? 신에 대한 신념을? 무엇을? 웃기지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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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북(Das sex buch) - 성에 관한 가볍지만 신중한 담론

개인서랍/책감상 2009.03.22 18:51

 성욕만큼이나 사회성이 짙은 욕망은 없습니다. 식욕만 보더라도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한국의 개고기를 비난하는 경우 정도만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곤 합니다. 하지만 이 성욕이라는 것은 사회에서 보통 생각하는 ‘평범’과 관련해 어느 입장에 서 있느냐에 따라 사회적인 이목을 끌기 쉽습니다. 한 예로 ‘연예인 k씨 난잡한 성생활’이라는 기사는 많이 보았어도 ‘연예인 c씨의 보신 행각’이라는 기사는 보기 힘듭니다. 과연 이 성이라는 것은, 무슨 이유로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혼자만의 관계가 아닌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것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둘의 지배 혹은 피지배 관계에 대해,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좀 더 생각해보다 보니 이렇게 담론 화 돼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현 시대는 과거 산업 사회의 양분 화된 사회가 아닌 다원화되어져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강조되고 모두의 목소리가 커지는 사회에 살고 있기에 더욱 성욕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거 남성 지배적, 이성애 지배적 사회에서는 그저 남성이 편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그것이 진리인 양 모든 것을 결정 내리던 시대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이 ‘섹스북 Das sex buch'라는 책 역시 이런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매우 무거워 질수 있는 주제를 가벼운 문체로 써 내려갔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부분에 긍정적인 손을 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매우 부정적인 모습을 취하고도 있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저는 성에 관해 어느 정도 정립되었다고 생각한 부분들이 이 책을 읽고 매우 많이 흔들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이 책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적인 입장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다만 더욱 생각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우선 언급 할 문제는 이 책의 저자, 퀀터 아멘트는 남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전반을 읽다보면 그는 남자의 입장에 관한 이야기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남자가 남자의 입장에 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이상할 따름이었습니다. 물론 카이 우베라는 아이가 나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한낱 아직 성경험이 없는 청소년 입장에서 말하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래서 카이우베의 말들은 자칫 남성 전체의 말로 오인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매우 위험한 구성입니다. 또한 이 책은 아직 성적으로 아직도 힘이 없는 여성과 동성애자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하는 모습에만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들만 변하고 남성과 이성애자들은 그대로 그들 위에 군림하는 상태로 있다는 것인지요? 저는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남성과 이성애자들의 입장은 어디가 버린 것인가요? 성적으로 사회에서 힘이 약한 이들의 입장만 쓰다 보니 남성과 이성애자들의 입장은 놓쳐버린 것인가요? 현재 산업사회 이후 그와 맞먹는 사회적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로 인해 여권과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신장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이 완전히 남성을 지배하고 동성애자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가 도래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여성과 동성애자들은 이러하니 남성과 이성애자들은 이것에 맞추어야한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동성애자들은 산업화 이후 엄격히 사회에서 분리되다가 이제는 빛을 보려고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를 대하는 이성애자의 태도에 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올리케의 동생이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약간씩하고 있지만 그것을 크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제가(남성) 남성 동성애자를 만나면 어떻게 그를 받아 들여야 할지 전혀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분명 남성과 여성은 다르고 다른 것은 습득해 왔고 다른 경로로 오르가즘을 느끼고 이런 사회적 변화에 적응해 가는 방식도 다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여성은 이렇다.’라고만 언급하고 있지 남성이 어떻게 변해야하는 것인지, 어떻게 그 둘이 협력해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너무 소홀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문제는 낙태 문제입니다. 이 책에서는 임신 중절에 대한 독일의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부분에 대해 100%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너무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문제가 많이 이야기 되어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 맥락은 어느 정도 파악했습니다. 이 책은 임신 중절을 제도적으로 까다롭게 만든다면 불법 낙태가 성행할것이라는 논리를 피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그것을 떠나서 낙태의 합법화를 이런 식의 논리로 이끌어간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논리는 단순히 ‘마약을 철저히 규제하면 마약 값이 오르기 때문에 합법화해야 한다.-실재로 네덜란드는 마약에 관한 법을 어느 정도 완화했습니다.’ 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요? 물론 제가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이기에 이런 반문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이런 식의 논리는 낙태 반대론자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할 부분은 동성애에 관한 부분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 사회는 다원화된 사회이고 지배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동성애라는 것을 사회에서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제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성애뿐만 아니라 어둠에 있다가 새로 빛을 쐬고 있는 부분들이 모두 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 사회가 용인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모두가 각자의 가치 기준이 있다고 그것을 모두 용인한다면 과연 사회는 유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사회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생각도 들었습니다. 동성애자의 수가 많고 그들이 계속 인권운동을 하는 이유로 이것이 어느 정도 용인되어지는 것인지, 이해 할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동성애자는 이성애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혼란을 빠지게 해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종족 번식이라는 과업을 이행하지 않는 그들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용인되어지는 것인가요? 단지 그 수가 ‘정신병동’에 있는 다른 정신병자-이들도 역시 사회의 ‘보통’ 사람과 다르기에 경리된 것이 아닌가요?-와는 다르게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그 수가 또한 많기 때문인가요? 이점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위의 이야기로 이 책을 제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부분은 수긍하지만 몇 가지 납득가지 안가는 부분만을 언급한 것입니다. 초반에 언급했듯이 위트있게 사회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요즘 중고등학교에서는 어떻게 성교육을 하는지 모르지만 이 책 하나정도는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읽어 보았으면 좋겠네요. 물론 아직까진 성에 대해 보수적인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그것을 용납할지는 의문이네요. 그전에 우리나라 번역본에서 삭제된 사진들이나 복원시켜줬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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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 오디션, 사라져 가는 존재의 집착과 외로움

개인서랍/책감상 2009.03.21 16:03

사라져 가는 존재의 집착과 외로움

줄 곧 자신의 최우선 사항이었던 것이 어느날 돌연 무너져 버렸지요.그것은 조금 오버일지도 모름니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을 받아드리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원래 살아가는 것은 조금씩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것입니다.


 

미친 듯이, 목적의식 없이, 그냥 남들도 뛰니깐 자신도 그냥, 그러다 넘어지면 우리는 잠시 하늘을 쳐다보며 쓸데없는 망상에 빠진다. ‘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는 그런 허무에 농락 당한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흔들거리는 투명의 어떤 것을 쫓아 미친 듯이 집착한다. 아니,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에 집착하는 것이다. 간혹 그 뒤에 무서운 어떤 것이 도사리고 있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미쳐버릴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야마사키 아사미가 사랑이 없어 흉폭 해지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잃은 체 미쳐 버릴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현대인의 삶의 유형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누고 있다. 하나는 시게히루와 같은 인물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사미와 같은 인물이다. 시게히루는 매우 평범한 인물로 그려진다.-물론 배우자를 고르기 위해 오디션을 보는 것은 그리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의 재미를 위한 소재일 뿐이다. 소설에서 극도의 리얼리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시게히루와 같은 인물들, 그의 아들 시게히코와 그의 친구 요시가와는 모두 우리의 일상을 비추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가고 있는 극히 삶에 순응적인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들은, 아니 우리들은 그냥 인간이 그렇게 살아 왔듯이 그냥 그 자리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가끔 우리는 어떤 기회에서-요시코의 죽음-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감정은 허무감에 휘말려 아슬아슬한 인생의 절벽에서 넘어져 끝없이 떨어지게 된다. 허무는 인간을 농락하는 요인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그런 허무감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서 집착할 어떤 것을 사냥감을 찾듯 찾는다. 그리고는 사냥감이 나타나면 눈에 초점이 풀리고 입이나 벌리고 다니는 헐거인처럼 그것에 집착한다.
 

 이 소설에서도 이런 일상적인 것이 엿보인다. 시게히루는 요시코의 죽음으로 인해 허무감에 빠지고 그곳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두 가지 일에 집착한다. 하지만 그 두 일이 모두 이루어지자 다시 알지 못하는 허무감에 빠지고 다시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배우자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그의 친구 요시가와 역시 시게히루의 배우자를 고르는 오디션에 대해 매우 들떠서 거기에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시게히루의 아들 시게히코 역시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어머니의 상실은 어린아이에게 있어 자신의 목적의식을 잃게 하는 허무감으로 볼 수 있다.-미친 듯이 어떤 것 히스테리 적으로 매달려 다닌다. 이렇듯 우리는 허무를 잊기 위해 어떤 것에 집착하는 그런 일상을 반복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야마사키 아사미 같은 여자는 자신이 전에 써본 적이 없다는 작가의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여자는 우리의 일상과는 틀린, 허무가 아닌, 어떤 외로움에 빠져있다.
 

 야마사키 아사미, 치유 될 수 없는 유년기의 상처로 얼룩져진 기억들...거짓말 그리고 집착...그리고 외로움. 그것들은 그녀에게 있어 자아의 정체성을 잃게 한 것들이었다. 어디에 가서나 미움을 받았던 기억들. 그리고 항상 그녀를 미워하던 계부의 변질된 사랑의 기억들은 그녀 속에 괴물이 자리 잡게 했다. 고독과 파괴 충동 역시 인간이 농락 당하기 쉬운 요인이다. 그렇게 하여 그녀는 자신에게 거짓을 말한 모든 이를 증오하며 점점 그 괴물을 키워간 것이다. 투명에 가까운 진실에만 그녀는 존재했고 티끌과 같은 현실의 거짓은 무의식의 자아를 깨웠다. 그녀는 외로운 어린 시절의 피해자이며 그녀의 남자, 아오야마 시게히루는 거짓으로 투영되어진 그녀의 무의식의 자아를 깨운 현실인 것이다.
 

 이 여자는 왜 이렇게 자라야만 했는가? 이 여자는 바로 사랑의 결핍으로 자란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현대의 사람들은 사랑이 부재 돼 있어 보인다 시게히루가 허무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배우자를 고르는 것처럼 필요를 위해 만나고 헤어지는 것 같아 보인다. 작가의 말에서 나온 것처럼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흉폭 해지는 것이다. 온기 한 점 없는 이 현대는 차가운 인간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이 소설은 현대인의 유형을 오디션이라는 매우 독특한 소재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재 역시 현대의 황금 만능 주의를 상징 적으로 말하고 있다. 배우자를 오디션-연애 사업의 일부분-으로 뽑는다는 의도는 돈으로 좋은 배우자를 고른다는 의도가 내재 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황금 만능 주의로 인한 인간의 사물 화를 야마사키 아사미를 통해 고독과 연결 시켰다. 또한 이 소설은 황금 만능 주의를 포함한 일본에 대한 냉소로 가득 차있다. 이곳 저곳에서 어린 시게히코의 눈으로 일본에 대한 냉소가 남겨져있다. 물론 이 소설은 이런 작가가 전달하려는 어떤 것을 배제하고 평가한다하더라도 매우 대중적이고 재미가 있다. 나는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전개되다가 갑자기 소설 분위기가 사이코 스릴러로 바뀌는 것에 정신을 잃은 듯 책에 빠져 있었다. 결말 부분에서 시게히루가 거의 살인 당하기 직전 시게히코가 나타나 꼭 삼류 소설을 연상케 한 것 외에는 매우 구성이 잘 짜여진 소설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나의 짧은 소견으로 말한다면, 현대 사회가 극도의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간을 매우 강하면서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인들은 자연을 지배하려고 할 정도로 우둔하리 만큼 강한 존재로 보이지만 실재로는 작은 상처에도 헤어나 올 수 없는 매우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허무나 외로움과 같은 것들로 인해 점점 깊은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의 존재는-정체성-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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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하르 벤 젤룬 - 도둑과 공무원

개인서랍/책감상 2009.03.21 14:02
' 유연함'이라는 것을 갖지 못한 '톱니바퀴' 속의 '모래알'. 정직한 사람이 병신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유연함'이라는 것에 능숙한 그들은 대접받으며 떳떳이 살아가는 사회.

부정직한 그들의 더 많은 부를 위해 '모래알'을 회유 또는 제거하려 한다. 그는 저항하지만 마침내 그 '모래알'마저 부서져 윤활유가 되어 버린다. 이건 세상에 몇 남지 않은 정직히 사라지는 순간이다. 사회는 붕괴될 것이며, 그 '톱니바퀴'마저 소멸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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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 그는 언제 오는가

개인서랍/책감상 2009.03.21 13:58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 대금을 낸 후 남는 몇 천 원으로 서점 들렀다. 당시 다른 놈들에게 오토바이가 과시 대상이었던 것 처럼 내게 책이란 그런 존재였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기 보다 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어쨋든 이리 저리 둘러보던 중 그때 내 손에 잡힌 책이 동인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었다. 수상작은 신경숙의 '그는 언제 오는가'... 짧은 단문으로 된 제목. 이 책의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남들에게 있어보이는 책이었다. 동인 문학상...그는 언제 오는가..뭔뜻인지도 모르지만 있어보이지 않은가? 뭐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제부와 함께 죽은 동생이 뿌려진 곳, 남대천에 찾아간다. 그곳에 도착하면서 죽은 여동생의 일기장을 보며 옛 일들을 추억한다. 행복했던 일, 슬펐던 일, 그리고 동생이 자살한 일. 남대천에 찾아가면서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무엇보다 죽은 동생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아이 하나 못 가져보고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자살한 동생과 포획 망에 걸려 산란하지 못하고 죽어 가는 연어는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동생은 포획 망에 걸려 죽어 가는 연어와는 다르게 자살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대로 그녀의 삶의 끝을 결정한 것이었다. 죽음.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이 된다. 마치 그것은 폭풍의 눈과도 같은 것이다. 죽음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저 죽음과 함께 할 뿐 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는 슬픔이 되고 아픔이 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동생의 죽음이 그녀의 남편과 누나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듯이...


당시 노트에 적어놨던 문장

존재하는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자신의 죽음을 다른 존재에게 알리고 싶어한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어쩌면 단 한사람만.
-p.23

이런 냄새를 맡고 있으면 아직 단 한 번도 발음해 보지 못한 말을 하고 싶어진다.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p.41

어쩌면 죽음은 언니, 죽은 사람보다 살아남아 있는 사람의 몴인지도 몰라. 부모님의 죽음이 언니와 내 몴이었듯이, 그래, 나는 끝이고 내 죽음은 언니와 그 사람 몴인지도 몰라.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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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 빵가게 재습격

개인서랍/책감상 2009.03.21 13:50
 늦은 밤 밀려오는 배고픔의 고충은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일이다. 그리고 그 공복 감을 없애기 위해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냉장고 앞에 선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냉장고에 먹을 '먹거리'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에서는 어이없는 답변이 나온다. '빵 가게를 털어라!'아니 '공복의 근원인 저주를 풀어라!'...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다들 어처구니없어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처럼 가끔 겪는 황당하고 범상치 않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빵 가게를 터는 대가로 바그너의 음악을 듣는 것은 매우 황당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저주라니. 독자로서는 어이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생각들을 하곤 한다. 처리 못할 어떤 일이 갑자기 벌어지면 우리는 연관성 없는 것에서 연관성을 찾으려 하고 그것에 모든 것을 맡기려는 성향이 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어떻게 보면 작가의 의도는 독자에게 아무 의미 없다-내가 이 책에서 읽은 의도는 이런 인간의 미신적 성향이었다.
 

 이 책은 자칫 딱딱해질 우려가 있는 주제를 작가의 특유의 문체로 매우 위트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주인공의 공복 감의 느낌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물위에 떠 있는 보트에서 바라본 심해로 이미지화시켰다. 이것은 매우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었으며 공복 감을 고소 공포증으로 비유한 것은 매우 기발한 발상이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느낀 건 공복 감이었다. 어찌 보면 단편 소설의 매력이라고 할까? 이야기의 짧음으로 인한 아쉬움, 그리고 잘 알 수 없는 작가의 의도, 이것이 단편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단편 소설은 공복 감을 채울 수 있는 공복 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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