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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상어의 가치를 알아본 Charles Saatchi

아티스트백서 2009.08.03 16:32


이상어는 얼마일까요죽은상어입니다물론 썩지않게 포름알데히드에 잘 넣어두었습니다당신은 이상어를 사시겠습니까앞 뒤 상황모르는 모든 사람들은 그러겠죠줘도 안가진다고말이죠.먹지도못하고 짐만되는 이걸 뭐하러 가지고 있겠습니까하지만 미술작품이라면요?그래도안사실꺼죠?하 지만 산사람이 있습니다.그것도 91년도에 5만파운드(1)라는 거액을 주고 사들였죠그가 찰스사치입니다.

사진 :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그의 미래를 보는 눈은 정확했습니다몇년 전 부가세 포함 한화로 약 140억에 이걸 개인 수집가에게 팔아 넘겼죠.

사진 :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그리고 원가 1200만원짜리 상어를 수조관에 넣고 '살아있는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여 찰스 사치에게 작품을 판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데뷔시절 당시 보다 300배가넘는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뿐만 아니죠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이 작품은요?


작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폭로가 담겨있는 'My bed'라는 98년 작품을 3억원에 사들였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돈이 집에서 썩고 있다 한들 이런 선택을 할수 있을까요?


 어찌보면 미래를 보는 눈이 정확한 것보다 거대 미술 시장이라는 미래를 만들어낸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찰스 사치는 탁월한 기획자이자 마케터(Marketer)라는 생각이듭니다. 당시의 Needs가 무엇인지 알았고 변화의 시기를 알았으며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들 조차도 잘 포장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잘나가는 데미안 허스트 역시 찰스 사치가 없었다면 현재의 자신도 없다고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yBa(young British artists:젊은 영국작가들)는 그가 기획한 최고의 상품일 거란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의 최초의 성공은 미술품 콜렉터가 아닙니다. 그의 이런 성공의 이전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반이 되었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광고 시장이죠. 


그는 그의 동생(Maurice Sastchi)과 함께   Saatchi & Saatchi를 1970년에 공동 설립했고 최고의 Agency로 만들었습니다. 



왼쪽 Charles Saatchi 오른쪽 Maurice Sastchi


그들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79년 영국 총선거에서 보수당의 캠페인부터였습니다.


 '영국병'이라고 불릴만큼 나태한 노동조합과 과다 복지를 없애겠다는 정책을 표방하는 보수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것은 넌센스겠죠. 하지만 Saatchi & Saatchi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놀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켰고 보수당은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TINA(There Is No Alternative)로 유명한 마가렛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가  최초의 영국 여성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됩니다. 그 결과 공화당에 의한 국가 사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나게됩니다. 또한 British Airways,Silk Cut등의 광고들도 주목 받으며 그들의 자리를 더욱 확고히 하게되죠. 잘나가는 그들에게 미국인 투자자들의 지원은 늘어났고 그런 그들은 회사를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5년에 그곳에서 나와서 M&C Saatchi를 새롭게 차리게됩니다.


 Saatchi & Saatchi나 M&C Saatchi나 모두 독특한 광고들을 만들어내는 현재 잘나가는 Agency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얘기 했듯이 찰스 사치는 미래를 보는 정확한 눈보다는 미래의 시장을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과 시장 경제의 움직임을 읽고 그 흐름에서 자신이 제시할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획기적인 Item을 내놓는 선구자죠. 아마 찰스 사치가 yBa의 1988년 한 허름한 창고에서 열린 Freeze전을 보면서 


"미래의 사람들은 이런류의 미술품을 좋아하게 될거야"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내가 이 쓰레기를 최고의 미술품으로 만들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Saatchi는 터키어로 시계 제조인(watchmaker)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요? 정말 그를 보면 그말이 딱 맞아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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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헐리웃 리메이크판 "The Host"의 감독 Fredrik Bond

아티스트백서 2009.04.10 21:29



 괴물 리메이크의 감독 제의가 마이클베이에게 갔다는 것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프레드릭 본드라는 잘 알려지지않은 감독이 자리잡게 되었고 현재는 사람들의 관심이 저 멀찌기 떠나 버린 상태이다. 거기다 봉준호의 새영화 '마더'가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더더욱 과거의 첫만 돌파 영화' 괴물'은 기억의 뒤안길에 조용히 모셔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필자는 영화 '괴물', 아니 봉준호 감독 영화에 대해 그렇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히려 이 프레드릭 감독을 예전 부터 상당한 관심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프레드릭 본드는 97년 CF 감독으로 데뷔하여 10년동안 그 세계에서 인정 받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99년에는 yBa(Young British Artist)의 후원자로 잘알려진 찰스 사치의 Saatchi& Saatchi New Director Showcase에 뽑히기도 했고 세기 힘들 정도의 수많은 상들을 쓸어 담으며 주목 받고 있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에는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다 방송국 작가와 오프라인 에디터로 일을 했다. 이후에 NYU 필름스쿨에서 공부를 하고 스웨덴으로 돌아와 TV 시리즈 프리랜서 감독으로 활동했다. 우연히 David Sims의 리바이스 작업의 다큐멘터리 감독을 하면서 TV시리즈 감독일을 그만두고 그의 프러덕션으로 들어가 광고를 찍게 되었다. 그 광고로 97년에 잡지 Shots는 그를 "New Director"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7년전까지는 주로 MJZ에서 활동하다 프로듀서인 Helen Kenny와 힘을 합쳐 Sonny London이란 프러덕션을 공동 건립해 활동하고 있다.


 
 
 
 
 

왼쪽 부터 Nike,Lynx,Miller,Levi's,New Balance

 그의 작품 중에 예전에 여러 포털 메인에 이색적인 해외광고로 소개되어 익숙해진 NIKE의 The Other Game과 Lynx의 Billions, 그리고 ㅡMiller Lite의 Dominoes가 있고 국내에서도 집행된 광고는 필자가 알기로는 Levi's의 Unbreakable와 New Balance의 Anthem이 있다. 언급한 5개의 광고를 제외하고도 주목할만한 광고가 상당히 많다.
 이들 광고를 잘 들여다 보면 프레드릭 연출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새로운 시각을 찾아 그것을 위트있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괴물의 영화 연출과 많은 부분에서 밀접하다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런 점에서 유니버셜이 그를 지목했는지 모르겠다.  

 일상에 흔히 벌어져서 그냥 모두 지나치는 일들을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와 웃음을 주는 Adidas Makes you better. 회사 생활에서 한번쯤은 상상했을 만한 일을 웃음으로 풀어낸 Hummer의 Escape. 의외성에 기반을 두어 사람을 놀라게 하는 Sears의BallReturn,Springboard등 짧은 시간안에 확실한 임팩트를 주고 있다.
 
 또한 광고와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의 가장 큰 실패요인인 비쥬얼위주의 연출이 아니라는 점이 그의 장편영화 데뷔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는 앞서 이야기 하였듯 방송작가로도 일을 한적이 있었으며 2004년도에는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쓴 단편영화[The Mood]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필자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여 뭐라하는지 잘 모르지만 단지 영상만 보고도 전혀 지루함을 못느꼈다면 말 다한 것 아닐까? 직접 보고 판단하시길.

단편영화 <The Mood>

  문제는 괴물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가족애'다. 그의 광고속에도 가족이 나타나는 작품이 몇있다.(Got Milk?,Wrong Direction )이 광고들 안에도 괴물처럼 좀 모자란 어른들이 얼핏보이긴한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를 바라보는 사랑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그의 광고에는 모자란 어른의 억압과 강제성만이 도출될 뿐이다. 괴물에서 명장면이라 할수 있는 희봉이 강두에게 얼른 가라 손짓하는 장면을 어떻게 재 연출할것이냐. 이문제다. 여기서 정서의 번역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괴물에서
나타나는 부정(父情)이 미국 헐리웃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정서 일지도 모른다.  실패한 리메이크작들에게서 보이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현지화를 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프레드릭의 첫 장편영화 연출의 성패가 좌우 될것이라 생각된다.

 미국 헐리웃에는 광고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데뷔하여 장편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이전에 소개하였던 미쉘 공드리, 마돈나와 조지 마이클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한 데이빗 핀처. 그리고 최초에 괴물 리메이크 연출 제의를 받았던 마이클 베이 역시 뮤직비디오로 시작하여 광고계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다. 지금 거론한 사람 뿐만 아니라 그쪽 헐리웃에서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연출의 경계를 헐리웃으로 넘어온 이들중 실패하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지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필자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감독이기에 기대반 걱정반으로 The Host를 기다리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원작이라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리메이크작이라는 것에서 깊은 한숨을 가져오기도 한다. 결과는 개봉이 되야 알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마이 쎄시걸" 처럼 큰 실망감을 주지는 않으것이라 장담하며 어느정도의 기대도 무리는 아니라 생각한다. 혹시 모른다. 원작을 넘어서는 멋진 영화가 나올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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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계의 발명가 Michel Gondry

아티스트백서 2009.03.29 22:03
 
미쉘 공드리 작품 보기 : AD          MV         영화 및 기타


국내에 Michel Gondry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이 이터널션샤인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전 까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뮤직비디오에 관한 마니아층이 전부 였을 것이고 아직도 미쉘공드리를 그저 신인 영화 감독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아니 그저 그렇게 기억속에서 지나가는 이름일지도-하지만 그는 뮤직비디오계의 발명가쯤으로 불리는 사람으로 99년에 개봉한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아누리브스)가 총알피하는 장면을 360도로 촬영한 블렛타임기법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저 그런 뮤직비디오와 광고들로 부터 새롭고 창의적인 영상언어로 차별화를 둔 미쉘공드리... 그의 유년기 시절 꿈은 발명가였다.

발명가의 꿈을 키우다

 그는 1963년 5월 8일에 프랑스 바르세유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렸을 때 주로 그의 사촌과 함께 레고를 즐겨 가지고 놀았으며 12살에 이미 그림을 애니메이션하는 기계를 레고와 같은 장난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무엇을 만드는것에만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최초의 키보드 중 하나를 발명한 사람이었고 전자오르간 가게를 운영했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물려받았다 한다. 아버지는 팝음악을 너무나도 좋아했고 수면의 과학에서도 나오는 듀크에링턴의  팬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미쉘 공드리는 음악을 즐겨들었고 후에 아버지의 가게가 문을 닫을 때 미쉘 공드리에게는 드럼세트를, 그의 동생인 올리버공드리에게는 베이스 기타를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둘은 펑크 밴드를 결성했다. 하지만 미쉘은 후에 파리에 있는 아트스쿨에 진학하게 되고 그곳에서 학교 친구들과 Oui Oui라는 다른 밴드를 만들게 된다.

밴드의 드러머 Michel


 

Oui Oui 는 10년 동안 2개의 앨범과 10개의 싱글을 발매했지만 그렇게 큰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당시 친한 친구이자 후에 촬영의 위치에서 미쉘과 같이 작업을 하게되는  Jean-Louis Bompoint는 그들의 음악을 최악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밴드에 있을 때 촬영한 Oui Oui의 뮤직비디오는 총 6개였다. 그중 초기 3개의 작품을 프랑스내의 아이슬랜드 레코드 사장이 뷰욕에게 보여줌으로 93년 뷰욕과 조우하게 된다. 그전 까지 자신의 밴드 이외의 프랑스와 영국, 미국의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찍어 주었지만 다들 일반적인 것을 원했다고 한다.


BJork 과의 만남 그리고 Turning Point, Human Behavior

  93년, 뷰욕역시 슈가큐브를 나와 솔로로 데뷔를 하는 시기였다, 미쉘 역시 위위의 해체로 혼자가 된 상황이었다. 이 둘의 공통된 솔로 데뷔는 모두 성공적이었다. 뷰욕은 솔로데뷔이전에도 슈가큐브로 세계적인 지명도가 있었지만 미쉘의 경우는 알을 깨고 나오는 듯한 특별한 데뷔의 무대였을 것이다. 이후에 수많은 아티스들과 작업을 하며 대단한 작업물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5편의 장편 영화를 찍은 유명한 영화 감독으로 그 자리 매김하고 있다.


영상의 특징


그가 아트스쿨에서 무엇을 전공하였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해 상당한 공부를 한것을 보이며 위위의 뮤직비디오 역시 애니메이션과 스톱모션으로 이루어진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영상에서 애니메이션적인 독특함을 발견할수 있다. 위에서 말한 Bullet Time 역시 미쉘 공드리 이전에는 애니메이션에서나 쓰던 기법이었던 것을 가져온것이다. 그 기법에 도움을 준것은 몰핑기법이었다. 그 최초의 뮤직비디오는 Army of Me의 다이아몬드가 커지는 장면이며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96년도 롤링스톤즈의 Like a rolling stone 이다.
 또한 그의 특징으로는 유아적인 아기자기함과 독특한 상상력이다. 레고로 만든 뮤직비디오  The White Stripes 의 Fell In Love With a Girl 이나 털실로 노가다를 한 뮤직비디오이자 아들 폴공드리가 출연한  Steriogram 의 Walkie Talkie등을 보면 소재면에서 유아적인 부분을 발견할수 있으며 그의 영상 전반에서 아이들의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영상물들이 그렇지만 미쉘은 유난히  프레임 장난을 많이 한다. 이에 관해 가장 주목할만 작품이  The White Stripes 의 The Hardest Button To Button 이다. 드럼을 쳤던 관계로 유독히 리듬감과 박자감이 좋았던 그다. 그렇게 박자에 맞춰 드럼과 기타가 등장하는 그의 연출은 놀라웠다. 또한 올리버공드리와 함께 연출한  Vines, The 의 Ride 역시 음악의 터지는 부분을 잘살려 표현한 수작이다. 그의 작품에는 그런 박자감과 리듬감이 눈부시게 빛나는 작품들이 많다. 방금 말한 The Hardest Button To Button 뿐만 아니라 Chemical Bro.의 Starguitar 역시 박자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뮤직비디오야 하겠지만 계속 보고 있노라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것이다. 그리고 컷과 컷간의 트랜지션의 효과 역시 대단하며(Je Danse Le Mia, Let Forever Be) 시간과 공간의 롱테이크(Sugar water, Lucas With The Lid Off, Protection) 역시 일품이다. 이런 영상안에는 그의 동생 Oliver Gondry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그는 95년 부터 포스트 프러덕션인 BUF, Method에서 비쥬얼 이펙팅작업을 하며 미쉘을 도왔었다.

그의 동생 Oliver Gondry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고 있는 작품(오른쪽 사진). HP 광고는 미쉘의 작품이 아닌 그의 동생 올리버의 작품이다. 사람들이 미쉘 공드리에 대해 어떻게 포스팅을 했나 보러 다니는 동안 미쉘의  작품이라 많이 소개되는 것을 보았다. 위키백과사전에 조차 그 작품을 미쉘의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HP광고 뿐만 아니라 바인스의 다른 뮤직비디오 Anysound도 미쉘의 작품이라 소개하는 경우도 보였다.
 그는 포스
트 프러덕션에서 일을 하였고 현재는 Paranoid US 와 미쉘도 활동하는 Partizan소속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피는 못 속이듯 그 역시 그만의 독창적인 비쥬얼을 보여주고 있으며 미쉘과 같이 스톱모션 기법을 많이 볼수 있고 포스트 프로덕션 출신이라 컴퓨터 그래픽적 요소를 많이 차용하여 미쉘보다 좀더 정제된 느낌을 받을수 있다. 이런 피는 미쉘 공드리의 아들 폴공드리(왼쪽사진) 에게서도 보인다. 16세에 벌써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데뷔를 했다. (The Willowz - Take a Look Around)

 현재 미쉘 공드리는 차기작 영화를 준비중이다. 수면의 과학에서 스토리 구성의 엉성함으로 혹평을 받았지만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 발전의 가능성을 보았다. 후에는 더 큰 성장을 보여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뮤직비디오 작업은 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의 영상을 계속 만나 볼수 있음으로 행복하다. 언제나 좋은 영상으로 대중에게 사랑 받는 감독이 되길 바란다.

미쉘 공드리 작품 보기 : AD          MV         영화 및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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