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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쿄]로 본 인간의 소외,존재,파괴본능

개인서랍/영화감상 2009. 5. 20. 11:57
  어렸을 때 난 여행이란 쓸데 없는 고생 쯤으로 여겼었다. 어짜피 사람 사는게 거기서 거기인데 뭐하러 그걸 보러 다니냐고...뭐 지금이야 못나가 안달났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항상 일본이라 이야기 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란 나라의 사람들은 그냥 사람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든 잡다한 것을 다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아주 독특한 문화를 재생산하며 각자만의 독특한 패션이 넘쳐나는 나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성과 어른들도 만화에 열광하는 나라. 겉으로는 상냥하지만 히키코모리와 이지메, 그리고 묻지마 살인의 나라. 이런 이미지가 일본을 희안한 동네로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그 동네는 내게 희안한 동네다. 부럽기도하고 무섭기도 한 동네 일본. 그 동네중 Tokyo라는 곳을 세명의 감독이 찬찬히 살피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 아주 단순하다. Tokyo...

물론 단순히 도쿄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아닐것이다. 도쿄에서 시작하여 인간 사회로 확장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묻지마 살인은 우리나라에도 있으며 미국은 대규모로 이루어지지 않은가?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이 그런 모양새를 좀더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런 점이 세감독에게는 깊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그닥 많은 사전 정보 없이 영화 보는 것을 즐기기에 나온지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셋 옴니버스영화의 감독이 누군지와 주인공 중 아오이유우가 등장한다는 것을 빼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한명씩 감독을 맞혀 보았다. 각 감독 스타일이 너무나도 뚜렷하기에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첫 영화는 요즘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 미쉘공드리의 작품이었다.

2009/03/29 - [아티스트백서] - 뮤직비디오계의 발명가 Michel Gondry


Interior Design
-경쟁과 소외

 존재감. 사람의 가장 큰 지탱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드리의 눈에는 사회가 발전하고 미디어가 발전함에 자신의 존재감을 감추려는 역행의 모습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감독으로 등장하는 남자는 남보다 잘하는 것을 만들어야하는 포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렇게 함으로 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그의 여자친구는 그와 반대로 자신의 소소한 것들로 부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한다. 하지만 첫 영화 상영회가 끝나자 점차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들기 시작한다. 그저 자신은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점점 빠지고 남들의 시선에 대한 어떤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그저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지만 자신의 취미를 남의 시선에 방해 받지 않고 즐길수 있는 의자로 변화한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만 느끼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남들 보다 잘하는 것에 의한 존재감]이란 바로 일본이 가지고 있는 경쟁에 대한 강박을 표현한 것으로 느꼈다. 물론 이것은 일본뿐만 아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철저히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런 경쟁사회에서 경쟁적이지 않은 인간이 경쟁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면서 생기는 불안감을 적절히 표현한 영화라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그 불안에서 해소되어 다시 편안함으로 되찾은 의자라는 인생은 깊은 생각을 만들어낸다.

 인간으로 살것인가? 아니면 편안하게 살것인가?


Merede[똥]
-잠재의식속 파괴본능의 분출과 배설

이 영화는 레오까락스의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2가지를 상상했다. 분명 매우 그로데스크할 것이고 분명 드니라방이 출연할 것이라 예상했다. 너무나도 기분좋게 두 가지 모두 적중했다.

 초반 부터 광인이 나와 설쳐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바로 레오까락스라 생각했으며, 조금 시간이 지나고 그 광인이 드니라방이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도입부는 나쁜피에서 데이빗 보윗의 모던러브에 맞춰 드니라방이 길거리를 뛰어다니던 롱테이크 씬과 겹쳐지는 장면이었다.


저 여자분들이 입은 빨간색은 우연히 입은 것이 아니며 드니라방이 입은 녹색 옷도 그냥 입힌 것이 아니다. 저 장면을 다시 보면 알겠지만 군데 군데 빨간 간판이 유난히 많다는 것을 알것이다. 누벨이마주의 대표적 인물로 소개되는 레오까락스는 붉은색의 강렬함을 상당히 좋아하며 영화에서 자주 표현된다.하지만  나쁜피에서야 회색계통 벽에 드문 드문 붉은색을 표현한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지만 도시에서 드문 드문 보이는 붉은색이 인지 될려면 드니라방의 녹색(보색대비)옷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광인의 횡포는 계속 이어지고 순간 사라진다.

 인간이 인생에서 지나치기 힘든 덫이 있다면 바로 "파괴 본능"이다. 순간의 가치관의 대립, 아니면 그냥 삶이 지루해서, 뭐 이유는 많다. 쌓여있던 수많은 억압의 에너지가 분출되어지는 기회는 수없이 많다. 그런 여유 구멍도 너무나 많다. 그런 구멍이 바로 이 영화에서는 맨홀로 그려지고 있다.

일본인과 직접 이야기해 본적도 만나본적도 없지만 들은 이야기로는 매우 친절하다 얘기한다. 겉으로는 그렇게 친절하다 얘기한다. 하지만 그렇게 참은 감정을 어디에 쌓아두겠는가? 그 화는 언젠가는 어디에서든 어떤방식으로든 터지기 마련이다.

 사람 뿐만 아니다. 일본 자체가 그런 역사가 땅밑에 묻어 있다. 지하에 탱크와 수류탄등 전쟁이 남겨 놓은 것들이 그대로 쌓여있다. 그것들은 언젠가는 터진다. 그리고 영화에서 실제로 터졌다. 바로 묻지마 살인이다.

 또한 그 광인은 꽃과 돈을 먹는다. 즉 겉치레(또한 일본의 국화는 국화다.또한 일본의 의리와 성실을 상징하기도 한다.)와 자본이 그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어찌보면 그런 겉치레와 돈이 그런 광인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얘기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광인은 바로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속내가 광인의 것이라는 것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겉만 멀쩡하게 하고 다닌다.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겉으로 꺼내면 광인 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런 속안에 가지고 있는 광인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언어 역시 다르다. 그것을 통역해주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마치 이것은 인간의 다중적인 성격으로 묘사되어진다. 그둘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잘 관찰하면 알겠지만 두 사람의 하얀눈의 위치는 각기 다르다. 광인은 오른쪽, 변호사는 왼쪽. 즉 하나의 인격이라 묘사되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관객은 그렇게 등장한 변호사가 광인이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지에 대해 전혀 알수 없다는 것이다. 둘이 무슨 작당을 했는지 조차 알수 없다. 그 변호사는 광인이 죽지 않고 깨어났을 때 조차 놀라지 않는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들 뒤를 쳐다볼 때 혼자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즉 변호사는 모든것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혹은 그 사라진 광인이 변호사와 하나의 인격으로 합쳐진것일 수도 있다.

그 광인의 이름은merde,똥이다. 즉 사회가 배설해야 할 무엇이다. 하지만 배설되지 않는 다는 얘기다 배설을 할려고 해도 배설되지 않고 세상에 머물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신도 이제 늙었다"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다.


 이 영화를 좀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일본자체를 하나의 사람이라 생각해도 될것 같다.-작품을 이해하는 것에 위험한 발상일수도 있지만 좀더 쉬울수 있다는 내 제안이다. 다시 말해 광인은 인간안에 내재되어있는 파괴본능의 요소이며 겉은 번지르하게 꾸며 놓은 일본의 시간 폭탄과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다.

히키꼬모리
-인간의 희망을 위한 약진

봉준호 감독이 부러웠다. 이유는 아오이 유우와 1미터 안에 같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오이유우는 이쁜 얼굴은 아닌데(여자분들이 욕할지도 모르겠군) 그저 묘한 구석이 있다. 정말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게해주는 배우다. 연기는 잘모르겠지만 그래도 저예산 영화만 쫓아 찍는 것만 보면 배우로서도 자기 이미지를 잘 알고 관리하는 것 같아 좋다. 그냥 마냥 좋다.^^


 이 옴니버스 영화의 구성을 이렇게 해놓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인간 소외의 시작 그리고 분출 그리고 해소의 구성이다.

 봉준호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호와 상징의 장치들이 많지 않다. 있었도 그렇게 영화를 이해를 못할 정도로 배치되어 있지 않기에 별 무리없이 감상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별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사실 위의 두 프랑스 감독의 영화도 본인이 느끼는 해석이지 그것이 모든 관객에게 강요할수 있는 해석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가 느끼는 각자의 느낌이 있을 것이고, 또 영화 관람의 중요점을 상징주의적 접근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볼수도 있다.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어쨋든 영화는 남주인공의 인류애(Love)라는 의미로 하나의 약진을 한다. 한 사람으로 부터 시작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그런식이다. 앞의 두영화에서 말하는 암울한 인간상에 대한 구원의 이야기이며. 그 해답을 봉준호는 Love라 얘기하고 있다. 사랑...
좋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좋은 영화들이었다. 미쉘공드리야 본인이 워낙 좋아하고 아끼는 감독이라  그냥 마냥 좋았고, 레오까락스는 폴라 X 이후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 뭐하나 했는데 내게는 좋은 인사와 같은 영화였다.  그리고 대중의 많은 관심에 비해 그리 큰 관심이 없던 내게 봉준호는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이 세 감독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며 봉준호의 영화 마더의 시사회 당첨을 기대해 본다.


이글은 Cinematiq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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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Favicon of https://realfolkblues.co.kr BlogIcon 아쉬타카 2009.05.20 16:3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도쿄는 한 번쯤 다시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각각의 분위기가 워낙 강하다보니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구요. 저도 트랙백 걸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fivelove.tistory.com BlogIcon fivelove 2009.05.20 20:49 신고 수정/삭제

      오랜만에 느껴보는 영화에 대한 만족이었습니다. 미쉘 공드리가 가지는 구성의 문제점이 살짝 있긴 했지만 그건 그냥 덮어두어도 될정도의 만족감이었습니다^^

  • 2009.05.20 20:33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 2009.05.20 21:58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epartedsat.tistory.com BlogIcon 갱우 2009.05.21 02:2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역시 저는 무식해서 이런 심오한 내용이었는지조차 몰랐군요~오사랑(그냥 이렇게 부르면 안될까요?ㅎㅎ)님 덕분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잘 보고 가요~^^

    • Favicon of https://fivelove.tistory.com BlogIcon fivelove 2009.05.21 17:24 신고 수정/삭제

      ㅎㅎ 편한데로 부르세요..그리고 영화야 그냥 자신이 느끼대로 받아드림 되죠 뭐...공부 목적으로 영화를 보는거 아니면요 ㅋ